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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초 가요계를 수놓은 ‘썸풍(風)’의 파급력은 컸다. 예능 프로그램, 드라마 등 각종 문화 콘텐츠로 스며들었다. 씨스타의 소유와 정기고가 부른 ‘썸’의 가사인 ‘내꺼인듯 내꺼아닌 내꺼 같은 너’는 다양하게 인용됐다. 캐릭터에 몰입한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를 극찬할 때 ‘OOO인듯, OOO아닌, OOO같은 너’라는 비유를 쓰기도 했다.
직접 인용이 아니어도 남자와 여자의 미묘한 러브라인을 뜻한 ‘썸’은 하나의 소재로 활용됐다. 사귀기 직전의 분위기를 두고 ‘썸탄다’는 말이 나왔다. 이러한 상황을 개그로 승화해 공감대를 넓힌 케이블채널 tvN ‘코미디 빅리그’의 ‘썸&쌈’도 큰 인기를 얻었다. 개그 코너에서 유행어와 트렌드가 빚어졌던 현상이 전도된 셈이다.
‘썸’과 관련된 소재는 요즘 각광 받고 있는 연애 상담 프로그램의 주요한 사연이 되기도 했다. 종합편성채널 JTBC ‘마녀사냥’의 ‘그린 라이트를 켜줘’라는 코너는 ‘썸풍’과 꼭 맞아떨어진 콘셉트로 더욱 호응을 얻었다. 케이블채널 tvN ‘로맨스가 더 필요해’에서도 ‘이 남자, 혹은 이 여자, 저 좋아하는 것 맞나요?’라는 식의 사연을 소개하는 일이 유독 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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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가장 흔히 쓰이는 수식어로는 ‘특급’을 빼놓을 수 없다. 브라질 월드컵 중계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이영표에겐 ‘특급 해설’이란 말이 붙는다. 귀여운 성장을 보여주고 있는 KBS2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쌍둥이 이서준을 언급할 때도 ‘특급 애교’라는 표현이 따라온다. 프로그램을 빛낸 출연진을 두고 ‘특급 게스트’라 칭하고, 개봉 한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관객몰이 중인 영화 ‘끝까지 간다’를 두고는 ‘특급 뒷심’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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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 상반기를 다룬 아이콘은 ‘의리’였다. 언제 어떻게 출발했는지 정확한 시점을 설명하긴 어렵다. 하지만 김보성을 필두로 한 ‘의리 열풍’이 연예계를 휩쓸었다. 인증샷을 남기는 가요계 선후배, 드라마 현장에서 훈훈한 모습을 보여주는 출연진, 지치지 않도록 스타를 응원하는 팬들의 정성, 모든 훈훈한 행보가 ‘의리’로 통했다. 의리라는 단어 자체가 화제라 많은 현대인들이 즐겨마시는 커피, 아메리카노는 ‘아메으리카노’라 불렸고, ‘좋게 좋게 끝내자’는 뜻의 ‘마무리’도 ‘마무으리!’라는 말로 바뀌었다.
‘의리’의 아이콘은 김보성에서 이국주로 변주되며 재미가 배가됐다. 이국주가 출연 중인 ‘코미디 빅리그’의 ‘10년째 연애중’이라는 코너도 의리에 기반을 두고 있다. 사랑이 가볍고, 외모가 중시되는 이면이 문제가 되는 요즘 ‘홀쭉이’에서 ‘뚱뚱이’가 된 여자친구를 10년째 만나고 있는 한 남자의 ‘의리’를 통해 묘한 웃음과 감동을 안기는 것이 이 코너의 백미다.
‘의리 열풍’은 사회적인 분위기와 맞닿아 더욱 큰 파장을 일으켰다. 두 사람은 아예 각종 공공기관의 홍보대사로 발탁돼 국민에게 신뢰를 주는 아이콘이 됐다. 6.4 지방선거에서 투표하는 젊은이들은 ‘국가와의 의리를 지킨 개념인’으로 통했다. 세월호 여객선 침몰 사고 등 한 나라의 크고 작은 사회적인 일에 관심을 늦추지 않는 자세 또한 ‘국민으로서의 의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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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예능 프로그램 ‘일밤’의 ‘아빠 어디가’로 사랑받고 있는 6세 김민율은 아마 유행어를 만든 최연소 스타일 터다. 방송인 김성주의 둘째 아들로 시즌2에 고정 출연 중인 민율 군은 ‘내 소중한 종이인데’라는 말 한마디로 전 국민의 마음을 녹였다.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은 말 한 마디를 자체적으로 재생산하는 적극적인 제작진 덕에 ‘소중한 OO’은 일상생활에서도 흔히 쓰이는 유행어가 됐다. 한 다이어트 전문 커뮤니티에서는 회원들끼리 ‘오늘 내 소중한 삶은 양배추를 못 챙겨왔다’, ‘내 소중한 100Kcal인데’라는 식의 표현을 주고받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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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환의 ‘때땡큐’는 새로운 유행어로 부상했다. 브라질 월드컵 개막 전 평가전부터 MBC 해설위원으로 나서며 ‘돌직구 해설’의 진수를 보여줬던 안정환. 한국 국가대표 팀의 첫 경기로 이목을 집중시켰던 러시아와의 32강전에서 안정환의 입담이 터졌다. 당시 선취골을 넣은 선수 이근호를 두고 “정말 때땡큐죠”라고 외친 말이 화제가 됐다. ‘고맙다’는 뜻의 ‘땡큐’를 강조한 ‘때땡큐’라는 우스갯소리는 시청자에게 친근하게 다가왔다. 이후 ‘아빠 어디가’에서 ‘때땡큐’라는 말이 자막으로 종종 등장하고 있다.
안정환은 ‘아빠 어디가’에서 7세 아들 리환과 함께 출연 중이다. 방송 초반 안정환은 다른 동료들에게 늘 당하는 류진을 보며 눈시울을 붉힐 줄 아는 여린 마음의 소유자임을 보여줬다. 그를 ‘반지의 제왕’으로 기억하는 시청자들로 하여금 신선한 충격을 안긴 순간이었다. 무엇보다 아들과 노는 것이 어색한 아빠에서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하는 애교쟁이 아빠로 바뀌는 모습은 ‘부모 시청자’에게 공감을 줬다.
안정환만의 거부감 없는 캐릭터 특성 덕에 전문성이 중요시되는 스포츠 해설에서 ‘때땡큐’와 같은 표현이 시청자에게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졌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MBC 월드컵 중계진은 축구로 뭉친 라인업이다. 하지만 ‘아빠 어디가’ 출연진이라는 공통분모도 가지고 있었다. 예능에서 체감해 이미 익숙한 이들의 캐릭터 설정이 중계에서도 이어져 재미있는 구성을 완성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