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이름으로'이뤄낸 이종범의 500도루

  • 등록 2009-06-06 오전 9:46:25

    수정 2009-06-06 오전 9:46:25

▲ 이종범이 5일 대구 삼성전서 500도루를 성공한 뒤 베이스를 뽑아들고 있다. 사진=KIA 타이거즈


[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바람의 아들' 이종범(39.KIA)이 드디어 500 도루를 달성했다. 그러나 우린 그가 500번째 도루를 성공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마음이 잠시 '야구'를 떠났었기 때문이다. 돌아섰던 이종범의 마음을 다시 그라운드로 향하게 한 것은 가족의 힘이었다. 그가 아버지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장면 1. 은퇴 위기
지난 2007년, 한참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즈음의 일이다. 이종범은 처음 '은퇴'를 이야기했다. 나름대로 많은 준비를 하고 맞이한 시즌이었지만 야구가 뜻대로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위의 시선도 부담스러웠다. 모두들 "이제 이종범은 끝났다"고 이야기 했다. '돈때문에 버틴다'고 수근거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구단은 이미 그를 전력에서 제외한 듯 보였다.
 
이종범도 흔들렸다. 타율 1할7푼4리. 더 이상 추락하는 모습을 보이긴 싫었다.
 
그러나 아내(정정민씨)의 생각은 달랐다. 더 부딪혀볼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의 한마디는 흔들리던 이종범의 마음을 다잡아줬다.
 
"당신은 이종범이잖아요. 모두들 '바람의 아들'이라고 했잖아요. 그래서 500도루는 꼭 했으면 좋겠어요. 그럼 우리 아이들이 컸을 때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거에요. 아빠가 '바람의 아들'이었다고."
 
#2. 아버지의 이름으로.
2007년은 '바람의 손자'가 탄생한 때이기도 하다. 이종범의 아들이 야구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종범은 좀처럼 아들이 야구하는 곳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스타의 아들'이 아니라 '야구선수 이정후'로 인정 받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맘 같아선 직접 소매를 걷고 지도하고 싶었지만 꾸욱 참고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다. 가끔씩 학교로 데리러 가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날 멀찍이서 아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이종범은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고는 살짝 울먹이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지금 정후가 형들하고 라면 먹고 있네. 몇번 먹지도 못하면서 뭐 저리 좋다고 신나하고 있을까. 야구하는게 정말 좋은가봐."
 
옛날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변변히 먹을 것이 없어 삶은 달걀로 배를 채워야 했던 시절(그래서 이종범은 이제 삶은 달걀을 잘 먹지 않는다). 야식으로 라면이라도 나오는 날이면 전쟁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떻게든 더 먹으려고 머리를 디밀고 바쁘게 젓가락질을 해야 했다.
 
자신의 아들이 유니폼을 입고 라면 한 가닥 더 먹으려 낑낑 거리는 모습에서 20여년 전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던 것이다. 야구를 하지 않았다면 그 시간에 고급 레스토랑에서 폼나게 스테이크를 썰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종범의 아들'은 야구를 택했다. '아빠보다 더 잘하는' 야구선수가 목표라고 했다. 그래서 더욱 '아빠' 이종범은 힘을 내야 했다.
 
이제 막 야구를 알아가는 아들에게 아빠가 얼마나 좋은 선수인지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2008년 시즌 초반, 그의 아들은 전광판에 뜬 채종범이란 이름을 보고 "어, 아빠 이름이 잘못 나왔다"고 소리쳤다.
 
이종범은 더욱 마음을 독하게 먹었고 기어코 아들에게 왜 사람들이 아빠를 '바람의 아들'이라고 부르는지 확인시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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