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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이 올해를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겠다며 한 말이다.
지난 6일 개막한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코로나19로 인해 선정작의 극장 상영에 만족해야 했던 지난해와 달리 극장 상영과 더불어 2년 만에 개·폐막식 오프라인 행사를 치르며 ‘위드 코로나’의 시범으로서 국민적 관심 속에 치러지고 있다.
영화제가 운영하는 극장 및 모든 행사장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적용됐다. 마스크 착용, 체온 측정, 출입명부 등록을 해야 출입이 가능했으며 영화제 배지 수령자 및 개·폐막식 참석자는 코로나19 예방접종을 2차까지 마쳤거나 PCR 음성 확인을 증명할 수 있어야 했다. 영화제 스태프와 자원봉사자 600여명은 개막식 전부터 폐막식 후까지 총 4차례 PCR 검사를 받게 된다. 영화제는 이 같은 엄격한 방역 지침 아래 1200명 규모의 개막식을 무사히 치렀다. 지난 11일 6~8일간 영화제에 참석한 연예기획사 관계자 1명이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은 아찔한 순간도 있었으나 현재까지 추가 확진자 없이 축제의 의미를 살리며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영화제의 이정표를 제시했다는 평가다.
이용관 이사장은 부산에서 이데일리와 만나 “올해 영화제를 준비하면서 방역과 예산, 두 가지를 가장 신경 썼다”며 “중대본 중수본 부산시의 도움으로 방역은 현재까지 문제없는 것 같고 예산 또한 지난해 손실을 조금 만회할 수 있을 정도여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영화인들도 많이 참석해줬고 날씨까지 도와줬다”며 “태풍 걱정 없이 영화제를 치른 게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고 웃으며 말했다.
주말까지 좌석 점유율 88%…관객과 함께하는 축제 의미 살린 오프라인 영화제
영화제 관계자에 따르면 주말까지 좌석 점유율은 88%, 매진 상영율 77%에 달했다. 올해는 GV(관객과의 만남), 오픈토크, 무대인사 등을 통해 영화인과 관객들의 접점을 늘려 축제의 의미를 되살렸다. 올해 신설된 OTT 시리즈를 선보이는 ‘온스크린’과 부산의 14개 지역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동네방네비프’가 대표적. 넷플릭스 ‘지옥’ ‘마이 네임’의 상영과 오픈토크 행사는 매진을 기록할 정도로 관객의 관심이 가장 높았다. 관객 주도의 ‘커뮤니티비프’를 확장한 개념인 ‘동네방네비프’는 영화제가 올해의 성과로 여기는 부분이다. 이용관 이사장은 “코로나 때문에 비난받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이렇게 호응이 높을 줄 몰랐다. 행정가 정치인 기업인들도 관심을 보이더라”며 “영화만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예술 분야도 함께 참여해서 관객과 시민이 만들어가는 진정한 의미의 축제로 나아가고자 한다”고 밝혔다.
영화제가 축제의 의미를 되찾을 수 있었던 건 무엇보다 영화인의 높은 참여가 컸다. 코로나19로 참여하지 못한 해외 게스트를 대신해 올해는 국내 게스트가 화려했다. 영화제 측은 “코로나19 때문에 해외 게스트는 많이 모시지 못했지만 초청한 한국 게스트는 대부분 참석했다”고 밝혔다.
한국영화계의 살아있는 전설 임권택 감독을 비롯해 이창동·임상수·김지운·박찬욱·봉준호 감독, 안성기·최민식·이병헌·류승룡·박해일·유아인·송중기 등 국가대표 감독과 배우들이 참석했다.
개막식 행사에서 임권택 감독과 지난 5월 작고한 영화계의 영원한 맏형 고 이춘연 씨네2000 대표가 후배 영화인들의 박수를 받으며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과 한국영화공로상을 수상하는 모습과 개막작 ‘행복의 나라로’에 주연한 최민식이 “너무 보고 싶었다”는 소회가 뭉클함을 선사했다. 갈라 프레젠테이션 선정작 ‘우연과 상상’ ‘드라이브 마이 카’의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과 봉준호 감독의 대담과 커뮤니티비프 선정작 ‘친절한 금자씨’로 마련된 박찬욱 감독의 ‘금자씨로 보는 광기의 형상’ GV는 평소에는 들을 수 없는 심도 깊은 이야기로 시네필들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켰다.
해외 게스트들의 갑작스러운 일정 취소, 변경으로 인한 운영 상의 잡음은 흠으로 남았다. 이후에 일정을 다시 마련했으나 갈라 프레젠테이션 선정작 ‘아네타’의 레오스 카락스 감독의 GV가 행사 전날 취소됐고, 월드 시네마 선정작 ‘푸른 호수’의 기자간담회가 행사 15분에 취소돼 아쉬움을 남겼다.
정지욱 평론가는 “코로나와 방역 문제 때문일 것이나 행사 취소뿐 아니라 일부 상영관에서는 영화 시작 직전까지 준비를 마치지 않는 등 더러 미숙함이 보였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영화제는 방역과 축제를 다잡은 차분함 속에 열기가 느껴진다”고 평가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한동안 정치적 이유로 위상이 추락됐다가 회복해야 할 시점에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정상화로 가는 길이 더디게 진행되는 듯했다. 그러나 대규모 개막식을 비롯해 오프라인 행사를 치르는 모습을 지켜보며 칸·베를린·로테르담 등 다른 국제영화제도 놀라워했다는 후문이다.
이용관 이사장은 “올해 영화제를 통해 영화제의 정체성과 나아가야 할 방향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고 오프라인 영화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영화제가 가야할 방향을 위해서 대표적인 영화제들이 공동 협력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며 ”그 안에서 부산국제영화제는 아시아 대표 영화제로서 영화인과 관객, 영화인과 영화인을 위한 플랫폼 역할을 강화해나갈 것이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를 위해 부산국제영화제는 10년 발전 계획을 준비 중이다. 이용관 이사장은 “코로나를 겪으며 영화제끼리는 물론, 영화산업 주체들도 부산국제영화제와 공생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며 “여기에 ‘기생충’ ‘오징어 게임’으로 한류 콘텐츠에 대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 시점으로 영화제가 재도약할 또 한 번의 기회가 왔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영화제는 부산시와 TF팀을 꾸려 구체적 내용을 내년 2월에 발표할 예정이다.
15일 폐막식을 끝으로 축제를 마치는 부산국제영화제는 열흘 간 총 70개국, 223편을 선보였다. 폐막작은 렁록만 감독의 ‘매염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