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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배기완 아나운서에게도 평창 동계올림픽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중계방송을 넘어 직접 올림픽에 참여했다. 화려했던 개·폐회식에서 울려 퍼졌던 중후하면서 우렁찬 목소리. 주인공이 바로 배기완 아나운서였다.
개회식 공식 진행을 맡은 뒤 대회 기간에는 정신없이 경기장을 다니며 마이크를 잡았다. 인기 종목인 쇼트트랙과 피겨스케이팅 중계를 책임지며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지난 25일 폐회식에서 열전의 마지막 대미를 장식했다.
배기완 아나운서는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1988년 춘천 MBC 아나운서 시절 작은 하숙방에서 KBS 원종관 선배가 서울 올림픽 사회를 보는 모습을 봤다. 얼마나 영광스러울까 생각하면서 부러워했다”며 “그런데 30년 뒤에 내가, 그것도 개회식과 폐회식 사회를 모두 맡았다. 솔직히 지금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소감을 밝혔다.
평창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올림픽에서 쌓은 경험과 관록을 주목했다. 오디션 등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직접 공문을 보내 개·폐회식 진행을 정식으로 의뢰했다. 배기완 아나운서도 역사의 중심에 서는 기회를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워낙 큰 규모의 세계적인 행사다 보니 산전수전 다 겪은 배기완 아나운서에게도 쉽지만은 않았다.
배기완 아나운서는 “경기장 중계석 위 작은 방에서 방송하는데 시간에 맞춰 할 말만 해야 한다”며 “다른 말은 절대 해선 안 된다. 그것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규정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심지어 감탄사도 할 수 없다. 그런 제약을 생각하면서 시간에 맞춰 내용을 어떻게 잘 전달할 수 있을까만 신경쓰다 보니 특별한 감흥은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여왕이 돌아왔습니다”.
차분하지만 무게감이 실린 그의 한 마디는 성화대 밑에서 펼쳐진 김연아의 환상적인 아이스쇼와 어우러져 더욱 빛이 났다.
배기완 아나운서는 “IOC가 준 원고에는 김연아에 대해 “‘올림픽 챔피언, 전 피겨 세계챔피언’이라고만 적혀 있었다”며 “성화를 점화할 때 김연아가 스케이트를 타고 나타났다. 그 순간 ‘이걸로 끝내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여왕이 돌아왔습니다’라는 배기완 아나운서의 멘트는 즉흥적인 애드리브였다. IOC가 문제 삼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배기완 아나운서의 그 짧은 한 마디를 포기할 수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김연아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여왕이 돌아왔습니다’고 낮게 말한 뒤 관중이 환호하는 것을 듣고 그때 ‘김.연.아’라고 이름을 소개했다. 가장 짜릿한 순간이었다”며 “송승환 총감독과 양정웅 총연출도 개회식을 미치고 그 멘트가 최고였다고 인정해줬다”고 뒷얘기를 전했다.
이번 올림픽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물었다. 그는 여자 피겨 최다빈을 꼽았다. 최다빈은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에서 쇼트, 프리, 총점에서 모두 개인 최고점을 갈아치우며 7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지난해 어머니가 암으로 세상을 떠난 뒤 실의에 빠졌지만 이를 이겨내고 평창에서 큰 감동을 선물했다.
배기완 아나운서는 “최다빈의 표정에서 ‘엄마~ 나 할께’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며 “단체전 쇼트 연기를 마치고 신혜숙 코치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눈물이 날 뻔했다. 선수의 마음이 그대로 느껴지는 연기였다”고 밝혔다.
방송 경력만 30년이 넘는 배기완 아나운서지만 여전히 한 번의 방송을 위해 몇 시간 동안공부하고 자료를 준비한다. 스스로 ‘준비 시간이 남들보다 오래 걸리는 스타일’이라고 인정했다.
그렇다고 자신의 준비한 내용을 다 전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최대한 말을 아끼면서 시청자들이 느끼고 판단할 시간을 주는 것이 그의 원칙이다.
배기완 아나운서는 “항상 ‘그 사람이 중계하면 재밌다’라는 얘기를 듣고 싶다”며 “내가 현장에서 보고 느끼는 것을 시청자가 100% 느낄 수 있는 중계를 하는 것이 목표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계속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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