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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그룹의 음악에서도 뽕끼를 느낄 수 있다. 걸그룹 티아라는 ‘보핍보핍’ ‘롤리폴리’ ‘러비더비’ 등의 히트곡들에 뽕끼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중국에서 자신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을 뽕끼 덕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슈퍼주니어 유닛 슈퍼주니어-T는 트로트 유닛을 표방하며 ‘로꾸거’로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다. 슈퍼주니어는 한국뿐 아니라 중국, 일본 등 아시아를 넘어 유럽 등지에서 관심을 받는 글로벌 스타다. 빅뱅 멤버 대성은 트로트인 ‘날봐 귀순’을 발표,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내며 솔로 가수로도 성공시대를 열었다. 임창정은 “나한테 ‘뽕끼’가 많다고 하는데 난 사실 내가 그런 줄 모르겠다. 아재가 아재개그를 하는 걸 자신은 자각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라며 “내게 ‘뽕끼’는 일부러 드러내려고 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다. 한국사람이라서 그런 것 같다는 말 외에는 설명할 게 없다”고 말했다.
트로트는 그 만큼 한국 대중에게 익숙하고 친밀한 리듬의 음악이다. 트로트가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말 일본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엔카의 영향을 받아 탄생했지만 한민족 고유의 정서를 담아 독자적으로 발전한 한국의 전통가요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는 이유다.
◇ ‘목포의 눈물’ 80년 지나도 야구장서 인기
트로트는 1930년대부터 한국 대중음악의 주류로 입지를 다졌다. 이난영 ‘목포의 눈물’(1935), 남인수 ‘애수의 소야곡’, 김정구 ‘눈물 젖은 두만강’(이상 1938) 등이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광복 이후 1950년대까지는 현인이 부른 ‘신라의 달밤’(1947)과 ‘굳세어라 금순아’(1953), 신세영 ‘전선야곡’(1952) 등이 인기를 끌었다. 프로야구 구단 기아 타이거즈의 상징적은 응원가로 야구장에서 불리기도 한 ‘목포의 눈물’을 비롯해 발표된 지 80년 정도가 지났음에도 아직도 많은 대중이 부르는 노래들이다.
트로트는 한국전쟁으로 큰 상처를 입은 대중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데도 한몫을 했다. 백설희, 심연옥, 손인호, 박재홍, 황정자, 최숙자 등이 맥을 이었다.
1960년대는 트로트가 다시 발전하기 시작했다. 가요계에서는 트로트가 장르의 하나로 입지를 굳힌 시기로 본다. 1959년 ‘열아홉 순정’으로 데뷔한 이미자는 1964년 ‘동백아가씨’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이미자는 ‘흑산도 아가씨’, ‘섬마을 선생님’ 등으로도 큰 인기를 끌었다.
지금의 트로트 형태가 완성된 것은 1970년대다. 서구 폭스트로트의 4분의 4박자를 기본으로 강약의 박자를 넣고 독특한 꺾기 창법을 구사하는 독자적인 형태를 갖추며 지금의 트로트로 완성됐다. 이 시기는 대중음악의 중흥기와도 맞물린다. 1965년 데뷔한 남진과 1966년 데뷔한 나훈아가 라이벌 관계를 형성한 것도 트로트에 대한 대중의 흥미를 배가시켰다. 조미미, 김부자 등에 이어 하춘화, 이수미도 등장하며 그 뒤를 받쳤다.
◇ 2000년대 불황 속 이어진 스타 계보…다음은?
1980년대는 심수봉, 주현미, 설운도, 송대관, 현철, 태진아 등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트로트가 방송과 각종 행사장을 휩쓸며 인기의 절정을 누리던 시기였다. 특히 설운도, 송대관, 태진아, 현철은 트로트 4대 천왕으로 불리며 인기를 구가했다. 새로운 라이벌 시대가 열린 셈이다.
1990년대에도 조항조, 배일호 등이 활동을 했지만 중반을 넘어가며 트로트는 입지가 위태로워졌다. 록, 발라드, 댄스, 팝, R&B 등 다양한 장르가 등장하면서 대중을 사로잡았다. 트로트는 리믹스 버전, 메들리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한서경이 ‘낭랑 18세’, ‘울릉도 트위스트’, ‘소양강 처녀’ 등을 리메이크해 시장을 이끌었다.
2000년대 들어 트로트는 시대에 뒤떨어진 음악이라는 오명 속에 더욱 위축됐다. 다양한 음악적 요소들이 결합된 ‘세미 트로트’가 트로트의 주류로 떠올랐다. 그래도 장윤정, 박현빈, 홍진영이 스타 계보를 이었다. 트로트 스타도 대중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다. 이제 트로트계에서는 다음에 탄생할 스타를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