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승 캐디' 최희창 "야구배트 놓고 골프백 멘거 후회없다"

국내 전문 캐디 1호 최희창
해태 타이거즈 타자로 뛰다 은퇴
야구 스윙과 비슷해 골프 입문
KLPGA 8승, LPGA 1승 도와
  • 등록 2017-05-10 오전 6:00:13

    수정 2017-05-10 오전 8:30:05

지난 7일 열린 KLPGA 투어 교촌 허니 레이디스 오픈 최종라운드에서 김해림과 캐디 최희창 씨가 페어웨이로 이동하고 있다.(사진=KLPGA)
[이데일리 김인오 기자] 2008년 데뷔해 한 시즌도 쉬지 않았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 8승을 올렸고,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도 1승을 거뒀다. 나이가 찰수록 체력적인 부담도 크지만 필드에서 쓰러진다는 각오로 매년 투어에 임하고 있다. 유명 프로골퍼 얘기가 아니다. 그들의 ‘도우미’ 역할을 10년째 이어가고 있는 전문캐디 최희창(42) 씨의 투어 스토리다.

최 씨는 자타공인 국내 전문캐디 1호다. 2008년 LPGA 투어에서 최혜정(33)의 백을 메고 캐디로 데뷔한 최 씨는 2009년 서희경(31)과 인연을 맺고 KLPGA 투어에 들어왔다. 첫 해부터 3승을 이뤄냈다. 무명의 캐디였던 최 씨에게 ‘대박’이 찾아왔다. 그는 “당시 서희경은 최고의 선수였고, 나는 풋내기 캐디에 불과했다. 운이 따라준 덕분에 지금까지 캐디로 활동할 수 있었다”며 수줍게 웃었다.

이듬해인 2010년에는 서희경의 LPGA 투어 KIA 클래식 우승을 합작했다. 덩달아 최 씨의 이름도 널리 알려졌다. 전문 캐디로 자리 잡은 최 씨는 유소연(1승), 양수진(1승), 이미림(1승), 양제윤 등 스타급 선수들의 백을 메고 필드를 누볐다.

올해는 김해림(28) 옆을 지키고 있다. 1월에 정식 계약을 맺은 최 씨는 첫 대회인 월드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조력했다. 지난 7일에 끝난 교촌 허니 레이디스 오픈에서 김해림이 시즌 첫 다승자 반열에 오를 때도 옆에는 최 씨가 든든히 버티고 있었다. 그는 “서희경 프로 이후 다승이 없어서 솔직히 아쉬움이 많았다. 올해는 벌써 2승이다. 김해림의 샷 감과 컨디션이 최고조라 4승 이상도 기대하고 있다”고 조심스럽게 속내를 털어놨다.

키 193cm에 몸무게 100kg이 넘는 거구를 자랑하는 최희창 씨는 전직 야구선수다. 아마추어에서 잘하는 수준이 아닌 프로야구 해태 타이거즈(현 KIA 타이거즈)에서 1루수로 활약했다. 2군 무대에서는 홈런왕을 여러 차례 차지할 만큼 유망주였다. 하지만 1군 무대에서 빛을 보지 못하면서 경쟁에서 밀렸고, 1999년 IMF 구제금융 한파로 야구 배트를 놓게 됐다.

최 씨는 “은퇴한 후 한동안 방황했다. 야구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우연한 기회에 최상호 프로님을 만나 골프에 입문했다. 야구와 골프가 스윙이 비슷하기 때문에 금세 적응했다. 티칭 프로 자격증도 쉽게 획득했다. 하지만 나이탓인지 투어를 뛸 실력까지는 오르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어 “체력에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캐디로 전향했다. 다행히 좋은 선수들을 만나 지금도 필드에 머물고 있다”며 겸손해했다.

현재 KLPGA 투어에는 최 씨 말고도 2명의 프로야구 선수 출신 캐디가 있다. 서연정을 돕고 있는 이민채(LG 트윈스 출신) 씨와 박민지 캐디 오우진(KIA 타이거즈 출신) 씨다. 최희창 씨의 성공 사례를 보고 캐디의 길로 들어섰다. 물론 최 씨의 권유도 있었다. 필드에서는 양보 없는 경쟁자다. 하지만 그들의 성공을 누구보다 더 바란다고 했다. 최 씨는 “야구할 때 피나는 고생을 한 걸 우리끼리는 잘 안다. 그래서인지 마음이 더 쓰인다. 아직 부족하지만 내 경험을 최대한 많이 가르쳐주고 있다. 같이 웃을 날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애틋한 감정을 드러냈다.

최 씨는 선수들이 ‘믿고 맡기는’ 몇 안 되는 캐디 중 하나다. 부단한 노력이 지금의 위치를 만들어줬다. 그는 “선수들이 전지훈련을 떠나면 나도 두 달 동안 헬스클럽에서 땀을 쏟는다. 골프 규칙에 대한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캐디를 시작한 후 10년 동안 지켜온 철칙이다”며 “우승은 쉽지 않다. 그래서 나도, 선수도 아픈 날이 더 많다. 캐디는 선수의 아픔까지 짊어져야 한다. 그게 숙명이고 신뢰의 시작이다”고 말했다.

캐디로서 능력을 인정받으면서 수입도 웬만한 대기업 직장인보다 많다. 한 가지만 빼면 모든 게 만족스러운 삶이다. 최 씨는 아직 미혼이다. 결혼 시기를 놓친 것도 있지만 제대로 된 ‘인연’을 만나지 못했다. 그는 “캐디라는 직업 자체가 가족에게는 환영받을 수 없다. 주말이면 일터에 나가야 하고, 집에서는 잠으로 체력을 보충해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 ‘빵점짜리 아빠’다. 따라서 너그러운 ‘나만의 캐디’가 필요하다”며 활짝 웃었다.

지난달 30일 경기도 용인에 있는 써닝포인트CC에서 만난 KLPGA 투어 전문 캐디 1호 최희창(왼쪽) 씨가 프로야구 선수 출신 캐디인 오우진(가운데), 이민채 씨와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사진=방인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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