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중문화가 ‘브로맨스’에 빠졌다. 남자들의 연대를 다룬 방송도 인기다. tvN 드라마 ‘미생’과 MBC ‘진짜 사나이’, tvN ‘삼시세끼’ 어촌편, JTBC ‘학교 다녀오겠습니다’(사진 왼쪽 위부터=각사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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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스타in 양승준 기자]#1. 남녀 간의 밀고 당기는 멜로가 없었다. 최근 화제 속에 끝난 tvN 드라마 ‘미생’ 얘기다. 주목받은 커플도 이성이 아닌 ‘남남(男男)이다. 오차장(이성민 분)과 장그래(임시완 분)가 주인공. 영업3팀 상사와 계약직 직원인 두 남자의 뜨거운 연대가 시청자의 마음을 적셨다.
#2. 파킨슨병 환자 행세를 하며 입을 닫고 사는 70세 노인과 ’짱‘의 ’셔틀‘인 17세 소년. 사회에서 무시 받는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보듬으며 삶의 재활을 돕는다. ’아침이슬‘로 유명한 김민기 극단 학전 대표가 최근 올린 연극 ’복서와 소년‘이다. 대학로는 두 남자의 우정으로 뜨겁다. 창작뮤지컬 ’마이버킷리스트‘는 근육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소년과 소년원에서 나온 소년의 우정을 그려 관객몰이를 하고 있다.
▶“멜로보다 남자들의 우정”=대중문화가 ’브로맨스‘(브라더+로맨스)에 빠졌다. 때론 로맨틱하지만, 동성애는 아니다. 남자들의 우정에 가까운 인간적인 사랑에 집중한 콘텐츠가 인기다.
사랑보다는 멀고 우정보다는 가까운 남자들의 연대를 다룬 예능은 ’대박‘이 났다. 배우 이서진과 2PM 옥택연 단 둘이 강원도 정선 시골집에서 밥을 지은 tvN ’삼시세끼‘와 성인이 된 남자 연예인이 실제 고등학생과 우정을 나누는 JTBC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등이 대표적이다. 유재석·박명수·정준하 등의 사랑 같은 우정이 돋보이는 MBC ’무한도전‘과 전우애를 다뤄 인기인 ’진짜 사나이‘도 빼놓을 수 없다. 최근에는 TV를 넘어 유행에 상대적으로 덜 민감한 공연계까지 ’브로맨스‘가 스며들고 있는 모양새다. 그만큼 ’브로맨스‘가 대중문화를 지탱하는 축으로 자리 잡았다는 얘기다.
▶“으리 열풍 연장선” 삼포세대 등 사회 위기 반작용=사회적 배경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불안정한 일자리 등 기약 없는 미래로 ’삼포세대(연애·결혼ㆍ출산을 포기한 세대)‘가 20∼30대 10명 중 4명(통계청 기준)꼴인 시대다. 이들에게 이성들의 로맨스는 ’먼 나라 얘기‘다. 직장을 나와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전공하는 박건남(32)씨는 “먹고 살기 어려운 현실에선 이성 간 로맨스보다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사람들의 연대가 더 가슴을 뜨겁게 만든다”며 “그래서 ’미생‘을 재미있게 봤다”고 말했다.
비단 특정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올해 세월호 사고와 마리나리조트 화재 등 사건 사고가 쏟아지면서 국민의 사회에 대한 불안은 더욱 커졌다. 통계층이 최근 낸 ’2014 사회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의 둘 중 한 명( 50.9%)이 ’사회가 불안하다‘고 답했다. 2012년 37.9%보다 부쩍 는 수치다. 사회에 대한 불안이 커진 만큼 이성 간의 로맨스보다 ’브로맨스‘ 속 의리를 더 찾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KBS ’개그콘서트‘를 연출하는 김상미 PD는 “요즘 오후 11시 대 예능이 예년과 비교해 잘 안 되는데 너무 살기 어려워져 TV를 볼 여유조차 없는 게 아닌가란 생각도 했다”며 “지독한 경쟁 사회 속 생활의 각박함이 시청자들이 로맨스보다 동료애나 형제애를 더 찾는 이유”라는 의견을 냈다. ’브로맨스‘의 유행이 올 상반기 대중문화 화두였던 ’의리 열풍‘의 연장선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관계의 열망에 대한 또 다른 표현이라는 것이다. 드라마 ’미생‘을 쓴 정윤정 작가는 “영화 ’영웅본색‘(1986)을 보고 자란 세대라 ’브로맨스‘에 대한 낭만이 있다”며 “브로맨스를 휴머니즘이라 생각했고, 일을 열심히 하다 보면 멜로를 할 수가 없다는 현실성에 기반을 둬 브로맨스를 드라마에 강조했다”고 말했다.
▶“여성의 실종” ‘브로맨스’ 부작용?=싫증 난 멜로 이야기에 대한 염증은 대중문화에 ’브로맨스‘를 더욱 꽃피웠다. 사람 간 연대를 통해 감성을 잡고, 현실의 치열함이란 리얼리티까지 잡을 수 있는 게 ’브로맨스‘의 매력이다. 대중문화에서 ’브로맨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입지가 좁아진 건 여성들의 목소리다. 마트 여성 직원의 연대를 다룬 영화 ’카트‘가 최근 개봉하긴 했지만, 여성들의 연대를 다룬 프로그램은 방송에서 ’실종‘ 수준이다. 정석희 방송평론가는 “’여우비행‘을 제외하면 방송가에서 여성들의 우정을 다룬 콘텐츠는 점점 더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라며 “여성 방송인의 부재 혹은 안주도 생각해 볼 문제”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