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예능, 10배속 '光소비' 주기의 딜레마

'비정상회담' 등 신규 예능..수직 상승 후 '재미 급감'
트렌드의 빠른 소비..예능 제작진에도 풀어야 할 숙제
시즌제+메시지 담은 예능..현 시대 예능 돌파구로 활용
  • 등록 2014-10-30 오전 8:25:11

    수정 2014-10-30 오전 8:25:11

사진=JTBC 제공
[이데일리 스타in 강민정 기자] 예능이 딜레마에 빠졌다. 신선한 포맷이 발굴되기도 힘든 요즘이다. 빨라지는 소비 주기에 발목이 잡혔다. 호평 속에 안심했던 것도 잠시다. 새로운 것에 재미를 찾고 느끼고 즐기는 과정이 ‘광속’으로 소비되고 있는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에 예능프로그램의 혹독한 적응기가 예상되고 있다.

△‘열번이면 무뎌지는 나, 비정상인가요?’

종합편성채널 JTBC ‘비정상회담’은 방송 20주를 앞두고 있다. 4개월 동안 시청자와 만난 셈이다. 숱한 외국인 예능프로그램이 있었지만 ‘비정상회담’은 론칭과 동시에 이슈가 됐다. 11개국의 청년들이 모여 하나의 안건을 가지고 토론하는 포맷은 신선함을 안겼다. 유창한 한국어, 연예인 못지않은 준수한 외모, 갖가지 개성이 섞여 매회 보는 재미를 달리했다.

방송 1,2개월과 비교해 ‘비정상회담’의 현재 온도는 많이 낮아졌다. 11명에 대한 캐릭터 분석은 일찌감치 끝났다. ‘언어의 연금술사’라 불리는 타일러나 ‘꽉 막힌 속담 전문가’ 에네스 등 각국의 청년에게 기대하는 포인트는 빠르게 간파됐다. 벨기에에서 온 줄리엔은 어떤 이야기도 잘 받아주는 신사이며 일본의 타쿠야와 중국의 장위안이 어떻게 설전을 벌일지 예상되는 상황에서 시청자들의 재미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한 외주제작사 관계자는 “모든 예능과 예능인이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크기의 웃음과 감동을 줄 수는 없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사람들이 즐거움을 발견하고 이를 계속 유지해가는 시간이 굉장히 짧아졌다는 것은 분명하다. 새로운 패널을 구성해야 하는지, 코너를 작게 마련해야 할지, 모든 예능 제작진들이 100회가 넘어갈 때쯤 할만한 고민을 10회를 맞았을 때 하게 되는 상황을 체감할 거다”고 말했다.

사진=SBS 제공
△‘확산과 재생산, 정상의 대중들’

SBS ‘매직아이’나 ‘룸메이트’는 첫 선을 보였을 때부터 대중에게 식상함을 안겼다. 불과 1,2년 전이었다면 또 하나의 토크쇼 혹은 관찰 프로그램으로 즐겼을 법한 프로그램이다. 이젠 눈높이가 달라졌다. ‘룸메이트’의 박상혁 PD는 “요즘 대중은 기획의도만 설명해도 어떤 식으로 어떻게 프로그램이 진행될지 알아챈다. 제작진이 생각하는 그림을 상상하고 출연진이 보여줄 행동이나 말까지 예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연출하는 입장에서 굉장한 부담감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대중은 결국 ‘제작진인 듯 제작진 아닌 제작진 같은’ 정상의 위치에 올라있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시청자들이 프로그램을 제작진이나 출연진의 마인드로 바라보는 관점이 생겼기 때문으로 보고있다.

1인 미디어, 블로그, SNS 활동이 빠르게 늘고 있는 추세가 예능 소비 주기를 앞당겼다는 논리다. 예능프로그램은 대중이 공감할 만한 주제를 다루고 관찰 포맷으로 구성돼 있어 누구나 ‘나의 관점’을 적용해 생각하는 일이 가능하다. 과거와 다르게 지금은 시청하고 생각하고 글을 쓰고 교감하는 과정으로 확대됐기 때문에 콘텐츠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소비 주기도 빨라지고 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사진=tvN 제공
△‘시즌제와 메시지, 제작진의 돌파구’

대중의 ‘광속 반응’에 대처하는 제작진의 해법은 역시 ‘속도’다. 빠르게 소비한다면 빠르게 끝내는 것이 방법이다. 케이블채널 tvN ‘꽃보다’ 시리즈가 좋은 예다. ‘꽃보다’ 시리즈는 해외 배낭여행 프로젝트로 1년이 넘도록 시청자와 만났다. 물리적인 시간만 보면 대중이 충분히 질리고도 남을 양이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꽃보다’ 시리즈는 카테고리를 달리했다. 할배, 누나, 청춘으로 분류해 하나의 테마에 익숙할 때쯤 전혀 다른 조합을 내놓아 시청자들의 기대를 꾸준히 이어갔다. 기간을 정하기도 했다. 한 프로젝트 당 4회 분량으로 방송될 것을 예고했다. 그 결과 “더 보여달라”는 시청자의 요구를 끌어냈고 ‘감독판’이라는 이름으로 1,2회 추가하는 성과를 낼 수 있었다.

tvN의 한 관계자는 “케이블 TV는 타깃 시청층을 잡아 그들에게 소구될 수 있는 트렌드를 읽는 데 집중해왔다. 시즌제를 시도하고 10회차, 12회차로 종방 시점을 정해둔 것은 실패했을 때를 대비한 방법이었다. 요즘은 빠르게 교체되는 대중의 트렌드 소비 패턴에 발을 맞출 수 있는 효율적인 방안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밝혔다.

예능에도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사회 전반적인 주제를 다루는 ‘매직아이’나 우리 이웃과 생활 체육을 즐기겠다는 KBS2 ‘우리 동네 예체능’ 등 대중과 함께 할 거리를 다루는 예능은 많아지고 있지만 실질적인 힘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 사회가 잃어버린 리더십, 현대인들에게 부족한 여유, 점점 깨닫기 힘든 가족애 등 최근 대중에게 사랑 받은 영화, 예능, 드라마 등 콘텐츠를 보면 “사람들은 거창한 이야기보다 잊고 있었던 이야기에 더 큰 감동과 여운을 느낀다”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한번 스치고 소비되는 데 그치지 않는 감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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