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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침몰 사건의 다음 날인 2010년 3월27일. 고 박동혁 병장 부모의 집들이 모임에 ‘제2 연평해전’ 희생 용사의 유가족이 한자리에 모였다. 자신의 아들을 연평해전으로 떠나 보낸 그들은, TV에서 흘러나오는 천안함 침몰 사건 소식에 눈빛이 흔들렸다. 고 박동혁 병장의 부모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뭘 담더라도 상관없어요. 많은 국민이 우리 아이를 잊지 않기를 바라요.” 몇 년 동안 영화 제작을 위해 설득하던 김학순 감독도 어깨를 누르는 책임감에 허리를 곧추세웠다.
‘제2 연평해전’의 전투는 아직 진행 중이다. 당시 전투를 소재로 한 영화 ‘N.L.L.-연평해전’은 국민을 대상으로 클라우드 펀드를 모금 중이다. 순 제작비 60억원 중 재능기부 등으로 충당한 비용 외에 부족한 15억원을 클라우딩펀드 1억원 등 국민 모금과 기타 투자로 채워넣을 계획이다. 김감독은 오는 10일까지 이어지는 클라우딩펀드(소셜네트워크나 인터넷 등을 통해 시민에게서 자금을 모으는 방식)에 대한 관심이 ‘제2 연평해전’에 대한 국민의 요즘 인식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민모금은 굿펀딩(www.goodfunding.net)을 통해 진행되며 최소 5000원부터 펀딩에 참여할 수 있다.
“굿펀딩 게시판에 갖가지 사연이 올라오는데, 예상외로 젊은이들의 사연이 많더라고요. 중년층의 비율이 높을 줄 알았거든요. 그만큼 국가를 위해 희생한 연평해전 용사들에 고마움이 큰 것 같아요.”
김학순 감독은 지난 2007년 최순조 작가의 소설 ‘연평해전’의 판권을 사들여 시나리오 작업을 진행했다. 6년 넘게 쫓아다닌 끝에 2002년 ‘제2 연평해전’ 희생 용사의 유가족으로부터 영화화 허락을 받아냈다. 아픔을 묻어달라고 영화화를 고사하던 유가족이 마음을 돌린 건, 뜻하지 않게 불거진 천안함 침몰 사건이었다.
“유가족이 원하는 것은 국민이 기억해주는 것입니다. 나라를 위해 희생당한 아들들의 추모를 국가행사의 하나로 치르는 게 바로 유가족의 희망이었죠. 제가 영화에 담고 싶은 것도 이들의 숭고한 희생 정신입니다.”
‘제2 연평해전’ 희생 용사는 전사자 예우를 받았으나, ‘공무 중 사망’에 해당하는 보상을 받았다. 이들의 희생으로 2004년 전사자에 대한 규정이 생겨 천안함 사건이나 연평도 포격 사건의 순국 장병들은 그 혜택을 받아 전사자 예우를 받았다. 법적 소급 효력의 어려움 등으로 정작 이들은 전사자 예우를 받지 못했다.
김학순 감독은 ‘NLL-연평해전’을 통해 우리 국민이 자칫 잊고 있는 분단의 현실을 깨우치기를 바랐다. 6·25전쟁의 아픔은커녕 불과 10여 년 전 ‘제2 연평해전’ 충격마저 잊어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온갖 희생을 통해 지켜낸 조국의 소중함마저 잊는 게 아닌가 염려된다는 게 김 감독의 말이다.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해보라.’ ‘제2 연평해전’ 희생 용사는 순수하게 조국을 위해 산화한 이들입니다. 이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정치적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할리우드를 떠올려보세요. 이데올로기의 다툼은 있지만 조국을 위해 희생당한 사람을 기리는 영화가 얼마나 많습니까? 보편적인 상식 수준에서 이 영화를 받아들였으면 합니다.”
김학순 감독은 ‘NLL-연평해전’에서 역사의 대물림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각오다. ‘제2 연평해전’ 희생 용사와 그의 아버지의 이어지는 운명을 통해 분단의 아픔을 그려낼 생각이다. 김학순 감독은 “영화 속 우리 병사의 이야기는 논픽션이고, 북한 병사의 이야기는 픽션”이라고 귀띔했다. 전체 분량을 3D로 촬영해 2시간 가까운 런닝 타임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25분 남짓 등장하는 해상 전투 신은 해군의 도움을 얻어 실제 배를 배경으로 촬영된다.
인터뷰 말미에 김학순 감독은 ‘제2 연평해전’ 희생 용사 유가족의 부탁을 마음속에 담고 있다고 전했다. 유가족의 마음은 단 한마디로 표현됐다. “영화를 재밌게 만들어 달라.” 많은 국민이 ‘제2 연평해전’과 그 해전의 희생 용사를 기억하려면 영화적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제2 연평해전은?
2002년 6월 29일 오전 10시 25분 무렵, 서해 북방한계선(NLL) 남쪽 3마일, 연평도 서쪽 14마일 해상에서 일어난 해전을 일컫는 용어다. 1999년 6월 15일 오전에 발생한 ‘제1 연평해전’이 벌어진 지 3년 만에 같은 지역에서 일어나 흔히 ‘제2 연평해전’으로 불린다. 북한 경비정 2척이 남한 측 북방한계선을 침범하면서 벌어진 25분간의 해전으로 한국 해군 윤영하 소령, 한상국 중사, 조천형 중사, 황도현 중사, 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 6명이 전사하였으며, 19명이 부상당했다.
○…김학순 감독은?
현재 ㈜ 로제타시네마 대표 이자 서강대학교 영상대학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홍익대학원 미학과 졸업하고, 뉴욕대학교 대학원 영화학과, 아메리칸 필름 인스티튜트(AFI) 수학 (프로듀서 과정), 템플대학교 대학원 영화과 졸업했다. 한국 다큐멘터리학회 회장 등으로 영상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비디오를 보는 남자’(REWIND·장편·2004) ‘민들레’(Dandelion·단편·2005) ‘토팡가 페어’(Topanga Fair·다큐멘터리·2008) ‘켄터키 블루스’(Kentucky Blues·단편·2008) ‘어밴던드’(Abandoned·단편 애니메이션·2009) ‘뜨거운 여름’(Hot Summer·장편 다큐멘터리·개봉 준비 중) 등이 있다. 해군 병장으로 제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