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제공] 매서운 눈빛에 검게 그을린 얼굴, 입을 굳게 다문 최경주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CF 광고가 있다. 쉴 새 없이 스윙을 하던 최경주가 "오늘 당신도 4000번의 스윙을 할 수 있다. 그럼 내일은?"하고 말하는 장면이다. '탱크' 같은 최경주지만 호적상 1970년생, 실제 나이는 마흔둘이다. 2002년 컴팩클래식에서 한국 선수로는 처음 미 PGA투어 우승을 차지하고, 통산 7승을 거둔 한국 남자 골프의 개척자인 그도 요즘 고민이 있다.
26일(현지시각) 미 프로골프(PGA) 투어 플레이오프 시리즈 첫 번째 대회인 바클레이스 개막을 앞둔 뉴저지주 저지시티의 리버티 내셔널 골프장에서 최경주 프로를 만났다.
최 프로는 125명에게 출전권이 주어진 이번 대회에 페덱스컵 포인트 순위 92위로, 한국(계) 선수 가운데 가장 어렵게 출전 티켓을 구했다. 한국 남자 골프의 선두주자로 자부해 온 그는 최근 극심한 슬럼프에 빠졌고, 그가 목표로 했던 '아시아인 첫 메이저 대회 우승'마저 후배 양용은(37)이 먼저 차지하고 말았다.
최 프로는 기자에게 "한국 선수가, 그것도 친한 후배가 메이저 우승을 한 게 기쁘지만, 솔직히 그게 나였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고 털어놓았다. PGA 출전 자격을 잃어 지난해 다시 퀄리파잉 스쿨에 도전하는 양용은의 집을 방문해 격려까지 했던 최경주는 결코 목표를 포기하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여전히 기도 많이 하시죠?
"더 자주, 더 오래 합니다. 돈으론 살 수 없는 삶의 평안함을 기도합니다. 더 낮아져야겠다는 생각도 많이 하고요."
―2007년 PGA투어 상금 랭킹 5위에 오르면서 메이저 우승을 위해 몸을 만들겠다며 체중 감량에 들어갔는데, 오히려 그게 부진을 초래한 것 아닌가요?
"날렵하고 강인한 몸으로 갤러리가 봤을 때 '뭔가 다르다'는 느낌이 드는 감각, 구질, 스핀을 갖춘 그런 샷을 치고 싶었어요. 2007년 11월 93㎏이던 것을 7개월 만에 10㎏ 가까이 뺐어요. 그런데 감량 매뉴얼이 없었어요. 근육 사이 지방을 지압으로 비틀고, 찢고 하면서 체중을 뺐어요. 지난 6월 US오픈 무렵부터 통증이 심해지더니 이러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치료에 들어갔습니다."
―지금은 어떤가요.
―2년 전 선택을 후회하십니까.
"후회는 없어요. 더 나이 들기 전에 한번 해보고 싶었던 도전을 했던 거니까. 제 경험을 매뉴얼로 만들어 후배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요. 올해는 이렇게 희생하면서 내년 도약을 위한 준비를 해야죠."
―예민한 편인가요?
"굉장히 예민하죠. 저는 골프를 이론이나 메커니즘보다는 단순하게 치는 편이에요. 하지만 어떤 꽉 찬 느낌이 있어야 해요. 그게 없으면 모든 게 미흡하게 느껴지죠."
―2주 전에 클럽을 다시 바꿨고, 스윙도 다시 변화를 주던데.
"저는 변해야 산다는 신념을 갖고 있어요. 제가 이런 비유를 하는 게 뭐하지만, 기술이나 상품을 바꾸지 않는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나요? 골퍼도 기업과 비슷해요. 제가 의미 있는 골퍼로 생존하려면 늘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요."
―골프 인생의 18홀 가운데 지금 몇 번째 홀에 와 있다고 생각합니까.
―마흔둘에 아직 9홀이나 남았다면, 골프에 대한 욕심이 지나친 것 아닌가요?
"제가 사실 돈이나 명성이 아쉬운 것은 아니에요. 제 삶의 목표는 요즘 온통 재단에 가 있어요. 형편이 어려운 이웃을 돕고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최경주 재단'을 더 잘 꾸려가기 위해서도 제가 몸으로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껴요."
―PGA투어 10년이 넘었는데 특별히 생각나는 선수가 있다면.
"타이거 우즈는 참 기계와 같은 삶을 사는 능력을 타고났어요. 예를 들어 단백질 500g이 필요하다면 꼭 그렇게 섭취해요. 매사가 그런 식이에요. 비제이 싱은 연구하는 스타일이라기보다는 노력파란 생각이 들고요."
―한국 후배들은 어떤가요.
"양용은 선수는 자기 것을 가지고 막 밀고 나가는 스타일이에요. 그래서 메이저 우승을 할 수 있었던 것 같고, 원래 재능이 뛰어난 선수예요. 나상욱은 집중력이 굉장하고, 앤서니 김은 노력파예요. 위창수는 컴퓨터같이 한 치의 빈틈도 없는 스윙을 하려고 하죠."
기자가 '군기반장 스타일인 최 프로가 너무 후배들 칭찬만 한다'고 농을 했더니, 최경주 프로는 "그럼 제가 언론 앞에서 무슨 얘기 하기를 바라느냐"며 웃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