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깁기에 드라마 홍보… 설상가상 '설 특집'

'왕중왕전' 방송조차 재방송·재탕…

공중파 3社, 의미없는 '짝짓기·난투극' 난무
  • 등록 2009-01-28 오전 8:23:57

    수정 2009-01-28 오전 8:23:57

[조선일보 제공] 이런 '설 특집(特輯)'이라면 '설을 빙자한 특집'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편이 낫겠다.

지난 26일 방송된 SBS TV 설날특집 'TV로펌 솔로몬'. 아예 '아내의 유혹 특집'이란 부제를 단 이 프로그램은 드라마의 주요 장면을 20여분 보여 주는 것으로 시간을 때웠다. 남편의 호텔방 불륜장면, 아내를 익사시키는 장면, 여주인공이 깨진 유리조각에 올라서 피를 철철 흘리는 장면 등 이 드라마가 '막장 드라마' '엽기 드라마'로 불리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장면들이다. 그리고 출제된 법률 관련 문제는 이런 식이다. " '아내의 유혹' 주인공 교빈은 주인공 은재가 가정을 파탄 낼 작정을 하고 일부러 유혹한 데 넘어가 결국 외도를 했죠? 자, 이런 경우에도 간통죄가 성립할까요?" 대놓고 '아내의 유혹'을 홍보하는 프로그램이라는 비난을 들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15세 이상 시청가' 등급이 붙었지만, 설날 오후 8시대는 온 가족이 모여 무심코 채널을 돌리기 좋은 시간이다.

방송사의 '긴축'으로 각 방송사의 올해 '설 특집'은 예년에 비해 보잘것없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건 '예산'이 아니라 제작진의 '의식'이라는 것이 여지없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설날 특집, 알고 보니 자사 드라마 홍보?

23일 방송된 MBC TV '오늘밤만 재워줘'. 설날 특집 방송을 위해 초대한 손님은 다름아닌 MBC TV 일일드라마 '사랑해, 울지마' 주인공으로 출연하는 이정진. 진행자들은 "드라마 속에서 싱글 대디를 연기하는데, 실제로도 그럴 수 있느냐", "극에 나오는 것처럼 성격이 다정다감하냐" 같은 질문을 연달아 던졌다. 설날 특집이 자사 일일드라마를 홍보하기 위한 구실로 전락한 것. KBS 2TV 설 특집 '빅스타 X파일' 역시 '영화·드라마 등 각종 영상자료를 모아 설을 맞이한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보여주겠다'는 제작의도를 내걸었지만, 자사 일일드라마와 주말극 주요장면을 틀어주는 데 그쳤다.

◆이름뿐인 '왕중왕전', 어이 없는 '스페셜'

'왕중왕전' 같은 거창한 문구에 속았다 낭패를 본 경우도 있었다. 24일 방영된 KBS 2TV 오락프로그램 '샴페인'. 방송은 설 특집을 맞아 기존 게스트 중 가장 화려한 입담을 들려준 연예인들을 한 자리에 모았다고 홍보했지만, 실제 내용은 재방송을 편집한 짜깁기에 불과했다. 시청자 이민호(kevla)씨는 게시판에 '30분을 옛날 방송 하이라이트로 우려먹으면서 이걸 특집이라고 하다니, 해도 너무한다'고 썼다.

명절의 의미가 증발해 버린 '기형' 특집 방송도 시청자들의 질타를 받았다. MBC TV '내 딸의 남자' 설 특집 방송은 여자 연예인 네 명이 강남과 종로 두 곳에 성형외과를 운영하고 있다는 의사를 유혹하겠다며 쟁탈전을 벌여 눈살을 찌푸리게 한 경우. 의사 어머니에게 "제가 원래 평창동에 사는 게 소원이었다", "아들 낳는 사주를 타고 났으니 며느리로 받아주시면 손자부터 안겨드리겠다"라고 말하는 연예인 망언도 쏟아졌다.

MBC TV에서 방영한 설 특집 '스타 격투기 쇼―내 주먹이 운다'도 연예인들의 의미 없는 '난투극'을 내보내 원성을 샀다. 시청자 유은정씨는 "'이휘재 오빠를 갖겠다'고 여자 연예인들이 링 위에서 주먹을 휘두르는 장면을 왜 새해부터 봐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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