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태경 "햄릿처럼 고민하고 돈키호테처럼 도전한다"

  • 등록 2008-06-19 오전 9:10:44

    수정 2008-06-19 오전 9:10:49


[조선일보 제공] '시간'을 경매에 부쳤던 남자는 약속 시간보다 13분 일찍 나타났다. 크로스오버 테너 임태경(35)이다. 지난 겨울 태안 돕기 애장품 경매에 그는 '뮤지컬 동반 관람권', 즉 '시간'을 내놓았고, 그것이 가장 비싼 가격(250만 원)에 낙찰돼 화제를 모았다.

임태경이 8월 개막하는 뮤지컬 《햄릿》에서 시간을 원망하며 죽어가는 왕자 햄릿이 된다. 1만 명 넘는 팬카페 회원들로부터는 일찌감치 '황태자'로 불렸지만, 뮤지컬 배우들로부터는 종종 '낙하산'이라는 비판도 받았던 이 남자를 지난 16일 광화문에서 만났다.

―《햄릿》은 오디션부터 참여했나?

"처음부터 나는 '오디션 안 보겠다'는 자세로 뮤지컬에 임했다. 잘나서가 아니다. 뮤지컬계에서는 내가 에일리언(외계인)이잖나. 여기저기 오디션 보는 건 남의 밥그릇에 집적대는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그 동안 뮤지컬 출연은 내 장점을 아는 제작사가 제안해 이뤄졌다."

―가수로 출발해 《불의 검》(2005)부터 이번이 5번째 뮤지컬이다.

"스스로 늘 부족하다고 여겼는데 역시나 뮤지컬은 힘겨웠다. 노래처럼 감정에 몸을 맡기면 자연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아주 박살이 났다. 하지만 《햄릿》은 다르다. 뮤지컬 출연 제의를 받을 때마다 고사하는 입장이었지만 이번엔 즐기고 싶다. 욕심 난다."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2006)에서 예수 역을 맡았을 때는 "극장 밖에서도 예수 같다"는 말이 들렸다.

"사실 그 뮤지컬은 은퇴 전, 그러니까 20년쯤 뒤에 하고 싶었던 작품이다. 앞질러 하며 고뇌하는 표정을 자주 지었는데 흔적도 남았다. 내 미간에 있는 주름이 그때 생긴 상처다."

―보톡스 주사가 있지 않나.

"내가 값어치 있다고 여기는 건 '자연스러움'이다. 인위적인 것을 싫어한다."

임태경은 2002년 월드컵 전야제 때 소프라노 조수미와 이중창을 부르며 데뷔했다. 이질적인 것 같은 성악(聲樂)과 공학(工學)을 모두 공부한 그는 클래식과 팝을 넘나드는 크로스오버 테너다. 부드러우면서도 힘찬 노래로 팬들이 많다.

―어떻게 '시간'을 경매에 부칠 생각을 했나?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이었다. '시간은 프라이슬리스(priceless·값을 매길 수 없다)하다'는 광고도 있잖나."

―햄릿은 "남은 것은 침묵뿐"이라는 마지막 대사를 하기 직전 "나에게 시간이 있다면…"이라며 안타까워한다.

"우유부단한 인물로 통하지만 정이 많으면서도 애정결핍이라는 점에서 나와 닮아 있다."

―당신은 햄릿형인가 돈키호테형인가?

"둘 다다. 햄릿만큼 고민하고 돈키호테만큼 긍정적이다."

―오해도 많이 받는다고 들었다.

"나를 향해 '뜨내기' '낙하산'이라고 한다. '노래 좀 한다고 로비해?'라는 말도 들렸다. 너무 솔직하기 때문에 받는 오해도 많다. 연기력을 다져 넘어서려고 한다. 무대에서의 걸음걸이, 정지된 모습이 어려운데 《햄릿》에서는 두 다리로 땅을 버티고 기운을 뿜어낼 거다. 뿌리와 줄기가 단단하지 않은데 꽃이 예쁜들 무엇하나."

―노래와 팬은 당신에게 무엇인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노래는 '해결사'다. 사랑도 전하고 슬픔도 나눈다. 팬은 열이든 백이든 내게 다 굉장히 큰 숫자다."

▶《햄릿》은 8월 21일부터 숙명아트센터. 임태경·윤형렬·박건형·이지훈이 햄릿을 나눠 맡는다. (02)742-5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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