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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지난 3일 부산발 KTX. 김성근 감독은 서울로 올라오는 내내 마음이 급했다. 1년간 누구보다 많이 고생했고 한국시리즈서 좋은 활약을 펼치며 우승에 큰 힘을 보탠 유격수 정근우의 결혼식 주례를 보고 돌아오는 길.
그의 가슴 한켠엔 제자의 큰 행복을 함께 축하해줬다는 기쁨과 함께 고민도 함께 자리잡고 있었다. 이날은 SK가 코나미컵에 대비한 훈련을 시작한 날이기도 했다. 10월29일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뒤 짧은 휴식을 마친 선수들의 컨디션이 못내 궁금했던 것이다.
김 감독은 올라오던 길 전화통화에서 “(신영철)사장도 내려오셨더라. 그럴 줄 알았다면 주례는 사장께 맡기고 나는 훈련 하는데 나가봤어야 하는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며 농담 섞인 너털웃음을 지어보였다.
1984년 OB 감독 이후 24년만에 거둔 한국시리즈 우승이었다. 언제나 약팀을 맡아 상위권으로 끌어올리는 기적을 만들어냈지만 우승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그에게 부족했던 마지막 퍼즐을 채운 감격은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생각처럼 그렇게 흥분되지 않는다”고 했지만 솔직히 잘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김 감독은 실제로 담담했다.
‘큰 일 하나를 끝냈다’는 안도감 보다는 ‘이제 다시 시작’이라는 각오가 더 컸기 때문이다. 당장 눈 앞의 목표는 코나미컵 아시아시리즈였고 더 멀리는 내년 시즌에 대한 준비에만 온 신경을 기울였다.
5일 정도 시간이 있었지만 우승의 감격만으로 시간을 보낸 것은 우승 당일,축승회 자리가 유일했다. 이후 며칠간은 우승 관련 인사를 다녀야 했고 남는 시간엔 코나미컵과 마무리훈련 스케줄을 짜는 것으로 채웠다.
김 감독은 선수단 보다 하루 먼저(5일) 일본으로 건너가 지바 롯데 코치 시절 친하게 지낸 지인들에게 부탁해 놓은 주니치 관련 자료를 건네 받기도 했다.
아시아 시리즈서 SK는 비록 우승을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예선리그서 일본 챔피언 주니치를 꺾는 파란을 일으키며 나름의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김 감독은 거기서도 멈추지 않았다.
김 감독의 삶 자체가 그랬다. 목표를 세우고 이를 이루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 붓는다. 그 목표가 이뤄지면 또 다른 목표를 향해 다시 달려간다. 그는 첫 한국시리즈 우승 뒤에도 지금까지와 같은 길을 또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
김 감독이 고지 캠프 합류 첫 미팅에서 선수들에게 했던 말은 그의 철학이 어떤 것인지 가장 잘 드러내 준다.
“인생에는 시작만 있을 뿐 끝이란 건 없다. 하나를 이뤘다고 거기에 만족하면 거기서 발전이 멈춘다. 작은 것에 만족하지 말고 더 높은 목표를 향해 모든 것을 걸어라.”
김 감독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기를 쓴다. 그 속엔 그날 경기와 선수들에 대한 느낌, 자신을 향한 다짐 등이 빼곡히 담겨 있다.
다음은 김성근 감독의 10월29일자 일기다. 사실감을 위해 그의 문체 그대로 옮겨본다.
두산 6차 문학 18시
두산 100 000 001 2
SK 003 000 02X 5
채병룡(5.2이닝) 조웅천(1이닝) 가득염(0.2이닝) 정대현(1.2이닝)
우승. 드디어 했구만. ‘꿈을 현실로’라는 슬로건을 달성할 수 있어 다행이다. 그러나 실감이 전혀 없다.
유일하게 내가 모자랐던 우승이라는 훈장을 코치,선수,구단,팬의 힘으로, 덕분에 쟁취할 수 있었다. 눈물이 나올지 알았는데 예상 외로 흥분,감격이 없었다.
시즌 1위로 왔기 때문에 질 수 없었던 시리즈였다. 끝나고 보니 ‘아, 다행이구나’하는 안도감이 온다.
인터뷰에서 가족 얘기 했을 때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많이 참았다. 진짜로 식구들이 여기까지 많이 뒷바라지 해줬다.
최 오나(최태원 회장)까지 오셔서 같이 기뻐해주셨다. 헹가레도 받고 비루가케(우승 후 서로에게 맥주를 뿌리는 행사)에도 오셨다. 의미 있는 일이다.
참 1년 (다들)수고했다.
2년만에 다시 도쿄돔에 설 수 있게 됐다. 주니치인지 니혼햄인지??
우승이라고 하는 것은 끝이 아니다. 이제 또 시작이구나. 승부의 세계란건 참 비정하구나. 시간도 여유도 안 주는구나. 나한테….
지난 겨울 선수들에게 미팅 때 했던 말, “승리는 끝이 아니다. 가는 도중일 뿐이다”가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