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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SPN 김정욱기자] '지인(知人)'.
모 기업 광고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이 단어를 한자 뜻 그대로 풀면 단순히 '아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 말의 속에는 마음이 서로 통하는 벗을 일컫는 지음 [知音]의 의미가 강하다. 얼굴이나 이름을 안다는 1차적 의미를 넘어 오랜 세월 함께 하며 그 사람의 속내까지 속속들이 '잘 아는 사람'이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을 낳고 길러준 부모만큼 잘 아는 사람.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이해해주고 공유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을 우리는 지음인, 또는 지인이라 부른다.
기자로 일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알게 되고, 또 하루가 멀다하고 아는 사람은 늘어만 간다. 명함을 주고 받고 인사를 하며 일로든, 사적인 다른 목적에서든 누가 누구인지도 기억하기 버거울만큼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있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 중 내가 진짜 '잘 아는 사람', 지인은 과연 얼마나 될까? 그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면서 순간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 아닌 오랜 시간 함께 할 사람은 정작 손꼽을 정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신뢰'와 '존중'이 가득했던 15년 '지인'들의 대화
최근 스포츠팀 축구 전문 베테랑 선배와 서정원 선수의 인터뷰 자리를 통해 '지인'의 관계와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되새겨보게 됐다.
비오는 어느 궂은 날, 서정원 선수를 만나기로 한 서울 강남 도산공원 근처 한 카페는 여느때와 다름없이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카페 한 구석 자리에 앉아 있는 서정원 선수와 그의 앞에서 노트북을 켜고 이야기를 듣고 있는 선배의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다른때와 별반 다를바 없는 인터뷰 모습. 하지만 이날은 분위기가 좀 남달랐다. 우선 서로가 친숙한 듯 이름 뒤에 아무런 존칭없이 편하게 '정원아'라고 부르는 호칭부터가 자연스러웠다. 또한 인터뷰 특유의 딱딱한 '질의 응답'이 아닌 통상 우리네 사이에서 오고 가는 편한 '대화' 가 주를 이뤘다.
그러나 이날 서정원 선수와 스포츠팀 선배의 대화는 내가 알고 있던 인터뷰의 고정관념을 확실히 깼다. 두 사람은 서로 원하는 질문과 답변에 만남의 목적을 두었다기보다는 그 날의 만남 자체를 더 즐기는 듯 보였다.
촬영이 끝난뒤 전해들은바에 따르면 두사람은 축구 선수와 기자로 알고 지내온 게 무려 15년이 넘었다고 한다. 아마 15년 전 당시 축구계의 기대주였던 서정원 선수와 패기만만한 스포츠 기자로 현장을 누볐을 선배는 처음 만나 서로의 열정을 불태우며 꿈을 이야기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한 쪽은 은퇴를 결심, 지도자의 길을 떠나려 하고, 다른 쪽은 어느새 20여년간 한 길을 걸은 베테랑 기자가 됐다.
그날의 대화에는 서로에 대한 신뢰와 존중, 애정과 사랑이 가득 묻어났다.
1시간 30여분 동안 두 사람은 많은 대화를 나눴다. 다른 일정 때문에 인터뷰를 끝내야만 하는게 못내 아쉬운 듯 보였다.
◇ '지인'들의 인연을 카메라에 담는 것...즐겁고 설레는 작업
이후 따로 사진촬영을 위해 도산공원으로 이동했다. 근처에서 웨딩 촬영을 하던 신랑신부가 서정원 선수를 알아보고 기념촬영을 부탁했다.
쾌히 승낙한 서정원 선수를 향해 미소짓는 신랑신부. 이 모습을 바라보는 선배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흘렀다.
내가 그 때 한 일은 단지 셔터를 누른 것 뿐이었다. 하지만 여태껏 찍은 어떤 사진보다 자연스럽고 편안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그날 이후 서정원 선수의 인터뷰 기사는 온라인에 공개돼 축구 팬들의 높은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그 인터뷰에 대한 사람들의 지지가 스포츠 전문기자인 선배의 탁월한 글솜씨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나는 그 기사에 담긴 애정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단지 시간이 흐른다고 사람 사이의 관계가 돈독해지는 것은 아니다. 애정과 관심을 갖고 그 사람을 지켜봐야만 하는 것이다.
'지인'들의 모습을 카메라로 담는 일. 이 또한 즐겁고 설레이는 작업인 것 같다. 몇 년 후 잘 아는 그 누군가를 카메라에 담을 수 있는 기회가 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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