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구의 PD열전] 라디오 PD의 시트콤 도전기...'하이킥'의 김병욱

  • 등록 2007-07-16 오전 9:04:54

    수정 2007-07-16 오후 8:58:21


▲ 김병욱 PD(사진=김정욱 기자)

[이데일리 SPN 김은구기자] “이제 일일시트콤은 더 이상 연출하지 못할 것 같아요.”

김병욱 PD(46)는 MBC 인기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의 마지막 촬영을 마친 다음 날인 13일 오전 [PD열전]과의 인터뷰에서 앞으로의 행보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김병욱 PD는 ‘거침없이 하이킥’ 외에도 SBS ‘순풍산부인과’,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똑바로 살아라’ 등 그동안 여러 일일 시트콤을 연출했던 전문 PD이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 못하겠다니, 은퇴선언?  인터뷰 초반부터 당황스러운데 그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체력이 너무 달려요. 전에는 일일 시트콤 하나를 1년 넘게 연출했는데 이번에는 9개월밖에 못했잖아요.”

은퇴가 아니라 체력에 맞춰 기간이 짧은 차기작을 찾아보겠다는 것이었다. 긴장이 풀어지며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그러고 보니 이런 문답이 시트콤 식 웃음의 한 방법인 듯 느껴졌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김병욱 PD는 인터뷰도 시트콤 식으로 하나?’

◇ 라디오 PD로 시작. 시트콤 연출 계기는 입이 짧아서?
 
김병욱 PD는 1986년 MBC 라디오 PD로 입사했다. 예능이나 드라마 부서도 아니고, 더구나 라디오에서 방송생활을 시작한 그는 어떻게 시트콤과 인연을 맺었을까.

“일이든 공부든 혼자 하는 것을 좋아해 라디오 PD가 됐어요. 그러다 1991년 개국을 앞둔 SBS로 옮겼는데, 당시 SBS 라디오국은 PD가 아마존 취재를 하는 등의 창사 특집을 준비하지 뭐예요. 도저히 자신이 없었는데 예능국에서 불러줬죠.”

아마존 취재가 자신 없었던 이유는 “입이 짧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예능국에 와서는 출연자 섭외를 위해 사람들과 어울리고 부딪치는 것이 너무 괴로웠다. 더구나 자신은 판만 벌려주고 진행은 연예인들이 알아서 하는 게 예능프로그램의 주류라는 생각이 들면서 '나랑 맞지 않는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그런 그를 SBS ‘오박사네 사람들’ 등을 연출한 시트콤의 개척자 주병대 PD가 1995년 ‘LA아리랑’을 새로 만들면서 불렀다. 내성적이지만 재미있는 면이 있어 시트콤 연출에 적합하다는 게 주병대 PD의 판단이었다.
 
덕분에 김병욱 PD는 ‘LA아리랑’ 방송 중에 투입됐고 주병대 PD가 연출을 떠난 뒤 8개월여 간 이 시트콤을 혼자 연출하며 자신의 새로운 적성을 발견했다.

김병욱 PD는 ‘LA아리랑’ 종영 후 시트콤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 2개월간 연수를 하며 시트콤에 제대로 눈을 떴다.
 
김병욱 PD는 “한국 사회는 육두문자와 폭행이 남발하는 조폭코미디와 군대코미디에 익숙해 웃음에 거친 면이 있어요”라며 “시트콤은 그런 시청자들을 지금까지와 다른 방식으로 웃게 만들 수 있는 장르라고 생각했죠”라고 말했다.
 
▲ 김병욱 PD가 연출한 SBS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 대가족 주인공, 시트콤 흥행 요소지만 '양날의 칼'

김병욱 PD가 연출한 작품들은 ‘거침없이 하이킥’을 비롯해 대부분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함께 사는 대가족이 주인공이다.
 
김병욱 PD는 이를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 “요즘 3대가 같이 사는 가족은 비현실적인 설정일 수 있지만 그 안에 많은 에피소드를 담기 쉽죠. 특히 가족은 사회의 축소판인 만큼 사회적 이슈를 소재로 만들기에도 적합하고요”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김병욱 PD는 시트콤에서 성장한 자신이 생각하는 가족의 이상적 형태를 작품에 담기도 한다. ‘거침없이 하이킥’ 후반부에 시어머니 나문희와 며느리 박해미의 고부간 갈등이 사라지고, 가부장적이었던 할아버지 이순재가 가족적으로 변한 것 등이 그 예다.
하지만 대가족 구성원 전체를 주인공으로 하는 것은 초반에 극중 캐릭터를 시청자들에게 끊임없이 주지시키는 김병욱 PD의 연출 스타일에 큰 부담도 된다. 시청자가 캐릭터에 익숙해져야 시청률이 상승하는데  너무 오래 걸린다는 것이다.

김병욱 PD는 “‘순풍산부인과’는 6개월,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는 4개월이 지난 후에야 시청률이 안정권에 올라섰어요”라며 “방송사에서 기다려줬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조기종영됐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거침없이 하이킥’에서는 초반부터 이순재에게 ‘야동’을 보게 하는 등 강한 에피소드를 집어넣는 새로운 시도를 했다. 그 결과 ‘거침없이 하이킥’은 1개월 만에 인기를 얻었다.
▲ 김병욱 PD가 연출한 MBC '거침없이 하이킥'



◇ ‘거침없이 하이킥’은 시트콤이 아니다

“‘거침없이 하이킥’을 하면서 방송사에 ‘시트콤’이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말라는 요청을 했어요. 로맨틱 코미디 장르가 인기를 끌면서 드라마가 시트콤보다 더 코믹한 경우가 많을 정도로 장르 구분이 사라졌는데 굳이 분류를 하겠다니 웃기는 일이죠.”

김병욱 PD는 ‘거침없이 하이킥’이 정통 시트콤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거침없이 하이킥’은 시트콤과 드라마 기법을 혼용해 멜로는 드라마와 다를 바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병욱 PD는 “한국 시청자들은 시트콤보다 드라마를 더 좋아해요”라며 “‘거침없이 하이킥’이 조기종영되는 일이 없도록 두 장르의 특성을 모두 살리려고 했죠”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김병욱 PD는 한 작품에서 시청자들이 다양한 장르의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욕심에 유미(박민영 분)의 가족을 미스터리하게 설정하고 민호(김혜성 분)와 범(김범 분)의 우정을 동성애로 착각하게 하는 등 여러 장치를 했다.

김병욱 PD는 이렇게 다양한 시도를 했음에도 ‘거침없이 하이킥’을 시트콤으로만 분류하는 세간의 시각에 대한 서운함도 드러냈다.
 
“내가 연출하면 슬퍼도 시트콤이고 드라마 PD가 연출하면 웃겨도 드라마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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