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민의 6층 vs 갑의 12층..'용팔이'의 계급사회

  • 등록 2015-08-19 오전 7:50:05

    수정 2015-08-19 오전 8:11:19

용팔이
[이데일리 스타in 강민정 기자] ‘상류사회’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돈 많은 남자와 돈 없는 여자, 야망이 큰 남자와 소신이 강한 여자가 주인공이었다. 남자와 여자로 사랑하는 행복한 엔딩을 끌어내기까지, 사람을 힘들게 한 현실이 있었다. 꿈의 경중을 가르고, 감정의 분수를 따지게 만든 보이지 않은 계급사회 탓이다. 그 계급을 나누는 건 단연 ‘돈’이었다.

대놓고 이러한 사회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와 달리 병원을 이 사회의 축소판으로 만든 드라마가 있다. SBS 수목 미니시리즈 ‘용팔이’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누구든, 어디에서든 사람 치료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용팔이의 이야기로 알려진 이 드라마는 예상보다 훨씬 의도적으로 사회의 극과 극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때론 노골적으로, 때론 은연 중에 드러나는 2015년 사회의 실체는 ‘용팔이’의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만들어주는 힘이 되고 있다.

‘용팔이’의 한 관계자는 이데일리 스타in에 “배우들의 흡입력 강한 연기는 장혁린 작가의 힘있는 대본에서 비롯되고 있다”며 “탄탄한 구성으로 끝까지 웰메이드 드라마를 완성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소신이 흐르는 6층

일반적으로 병원이라 하면 연상되는 모든 것. 한신대학병원의 6층 풍경이다. 의사들이 병실을 돌며 진찰을 다니고, 수간호사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곳, 4~6명의 환자가 하나의 병실을 쓰는 곳이다. 우리 사회의 모습으로 확대한다면 ‘소시민의 평범한 삶의 현장’이 될 터다.

‘용팔이’에서 비추는 6층엔 소신이 흐른다. 한신대학병원에 재직 중인 가족이 있는지, 고위공무원의 아들 딸은 없는지부터 파악하는 김태현(주원 분)을 ‘다른 부류’로 생각하는 박태용(조복래 분)이 대표적이다. 어머니를 수술대에서 잃은 슬픔을 알고 있으면서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는 환자를 외면하는 김태현을 보며 “그런 사람인 줄 몰랐다”고 정곡을 찌르는 외과 수간호사(김미경 분)도 있다. 무연고 환자를 무책임하게 외면하는 김태현에게 속사포 일침을 가한 중환자실 수간호사(오나라 분)도 6층에 있다.

일말의 정의와 소신이 남아 있는 6층 사람은 지하 식당에서 마주한 김태현에게 싸늘하다. 선배, 후배, 동료, 너나 할 것 없이 그를 나무란다. 권력을 남용하는 갑(甲)이 비난받고, 득이 되는 일엔 절대 나서지 않는 약은 인간에게 쓴소리를 던진다. 그럼에도 방사능에 피폭될 병원에서 대피 명령도 없이, 이유도 모른 채 죽을 위기에 처하는 이들이 6층에 있다. 먹이사슬 가장 밑바닥에서 피해자가 되는 소시민의 삶이 6층과 닮았다.

‘용팔이’ 스틸컷.(사진=SBS)
△세속에 찌든 12층

12층은 호텔을 연상케하는 인테리어, 환자를 VIP 고객이라 부르는 시스템으로 ‘외강내강’을 완성한 공간이다. 고객 담당 팀장 신씨아(스테파니 리 분)의 말대로 12층은 작은 동네 의원처럼 독자적으로 움직인다.

이 병원 재단의 상속녀 한여진(김태희 분)이 12층을 지키는 실세다. 비록 3년째 식물인간처럼 갇혀 누워있는 신세지만 회사의 중요한 결재가 있을 때마다 오빠인 한도준(조현재 분)이 그를 찾아온다. 한도준의 ‘떨거지들’도 이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한번이라도 알현해 볼 수 있을까 전전긍긍이다. 한여진를 살리려는 주치의인지 감시하는 교도관인지 모를 이 과장(정웅인 분)도 있다. 세상 만사 걱정 없이 속 편한 바보 코스프레를 하는 한도준의 아내 이채영(채정안 분)도 여기서 발톱을 드러낸다. ‘잠 자는 숲속의 공주’ 한여진을 앞에 두고 송아지 스테이크에 와인을 즐기는 황 간호사(배해선 분)의 강심장도 12층에서 뛴다.

12층에선 돈, 명예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우는 이들의 비린내가 난다. 돈을 벌기 위해 조직폭력배 주치의 직도 마다하지 않았던 김태현도 결국 12층으로 왔다. 의사로서 자격이 박탈되는 위법을 저지른 김태현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곳이다. 그렇게 기어 오른 상류사회는 흉기로 여자를 찌른 범죄자가 괴한으로부터 여자를 구한 한류스타로 포장되는 더러운 세상이다.

왠지 모를 씁쓸함을 느끼는 것도 잠시다. 월급을 능가하는 어마어마한 위로금 앞에서 12층은 천국이 된다. 그곳을 영위하는 자는 위기 앞에서 특권을 누린다. “갑들은 쉽게 죽지 않는다”는 김태현의 말은 실제로 뉴스에서 접하는 부조리한 현실을 만들고 비리로 점철된 사건을 꾸미고 횡포를 반복하는 이들의 정곡을 찌르는 대사였다.

‘용팔이’에 출연 중인 한 배우의 매니지먼트 관계자는 “의학드라마라는 장르가 분명하지만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폭이 넓은 것 같다”며 “작품이 그리는 세계가 극명하게 갈리기 때문에 사회 현실과 맞물려 공감하는 시청자 반응도 접하곤 하는데 ‘용팔이’에 대한 몰입도가 그만큼 높다는 뜻인 것 같아 반갑다”고 전했다.

‘용팔이’는 첫 방송부터 두 자리수 시청률을 기록하며 ‘대박 신호탄’을 터트렸다. 방송 4회만에 전국시청률 16.3%의 자체 최고 기록을 올렸다. 5회부터 김태희의 본격적인 활약과 함께 더욱 풍성한 이야기가 전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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