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회', 남은 건 15,16회뿐..불륜을 돌이켜보다

김희애-유아인의 사랑..남녀 관계의 불륜이 전부 아냐
높은 아줌마부터 왕비서까지..상류 사회의 부조리함
앞만보고 달려온 김희애..과정 간과한 자아성취의 폐해
김희애-박혁권의 삶..사랑하지 않은 자들도 유죄
  • 등록 2014-05-07 오전 7:48:56

    수정 2014-05-07 오전 9:31:37

로맨스의 한 장면 같은 왼쪽 스틸. 그리고 ‘불륜’의 단면처럼 보이는 오른쪽 포스터. 어느 쪽이 ‘밀회’의 느낌과 가까워 보일까.
[이데일리 스타in 강민정 기자] 몰랐다.

‘불륜’의 뜻을 알기란 참 귀찮은 일이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불륜’을 쳐봤다. 사전적 정의가 궁금해서였다. ‘그린인터넷 캠페인’이니, ‘연령별 확인이 필요하다’느니, 검증 절차가 필요했다. 인증이 끝나면 단어의 뜻이 나오는데,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에서 벗어난 데가 있음”이라고 한다. 국내 포털사이트 중 하나인 네이버에 따르면 ‘불륜’이란 단어의 검색 결과는 ‘부적절한 정보를 제외하고’도 볼 수 있다. 결국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에서 벗어난 데가 있다는 불륜은, 기본적으로 부적절하다는 인상을 안고 있다.

‘밀회’ 김희애와 유아인의 첫 키스 장면.
그래서인지 종합편성채널 JTBC 월화 미니시리즈 ‘밀회’라는 작품을 보는 대중의 시선은 엇갈려왔다. 14회가 방송된 6일까지, ‘밀회’가 회를 거듭하는 동안 일부 대중은 김희애와 유아인의 사랑에 블랙홀처럼 빠져들기도 했고 또 다른 대중은 ‘불륜이 미화되고 있다’는 데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김희애와 안판석 PD, 유아인.
분명한 건, 이 모든 걸 연기하는 김희애, 유아인, 박혁권, 경수진, 심혜진 등 배우들의 시너지와 이를 지휘하는 안판석 PD와 정성주 작가의 호흡만큼은 탁월하다는 것. 이견이 없는 이 대목에서 대중은 ‘밀회’라는 작품을 인정해왔다. 결말까지 15,16회 남았다. 단 두회, 140여 분의 시간뿐이다. 돌이켜보면 ‘밀회’는 큰 틀에서 불륜이라는 소재를 두고 깊고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었다.

김희애, 김혜은, 심혜진. 상류 사회의 물고 뜯는 추악한 현실이 가장 큰 불륜이다.
◇상류사회의 부조리함

불륜의 뜻에는 어디에도 ‘사랑해선 안 되는 관계’라는 규정은 없다. 우리가 그 동안 부적절한 남녀 관계에 붙인 단어일뿐,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에서 벗어나는 영역은 많다. 안판석 PD는 드라마가 시작되기 전 제작발표회에서 사회적으로 질타를 받을 유부녀와 어린 남자의 사랑이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솔직한 이야기를 전했지만 회를 거듭할 수록 강조된 또 다른 불륜은 상류 사회의 부조리함에 있었다.

이 부분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건 심혜진부터 백지원까지 극중 서한예술재단의 곳곳을 비추는 인물관계에 있었다. 재단 이사장은 자신의 수족이 돼준 기획 실장의 불륜을 들춰내려고 혈안이다. 남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보고하길 명령하는 온갖 추잡한 행동을 한 스스로는 돌아보지 못한다. 기획 실장 앞에선 “너 없이 어떻게 재단이 돌아가겠냐”며 어깨를 두드리지만 그는 언제 나가 떨어질 지 모르는 기획실장의 뒤를 이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살기 위해 발버둥치지만 겉으론 고고한 척 행세하는 미운 백조의 전형들이다.

앞만 보고 달려온 김희애의 삶. 결과만 보고 과정을 묵인했던 삶에 대한 태도 또한 ‘불륜’이다.
◇결과 지상주의의 폐해

오혜원이라는 인물이 이선재라는 어린 남자와 바람이 났다. 이 사실 만으로도 혜원은 사회적으로 질타를 받을 일이지만, 그가 저지른 가장 큰 불륜은 바로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망가트린 일이다. 과정을 간과한 결과 지상 주의의 폐해를 스스로 만들어냈다. 높은 목표만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달려가는 우리 사회의 모습과도 닮은 부분이다.

극중 혜원은 선재에게 종종 자신이 몸담고 있는 상류 사회를 ‘추악한 곳’이라고 말해왔다. 땀이 배신하지 않고, 돈이 노력한 만큼도 벌이기 힘든 소시민의 삶을 산 선재에게 절대 들키고 싶지 않을 만큼 부끄러운 삶이었다. 하지만 혜원은 이 사회에 발을 담그기 위해 누구보다 처절하게 질주했다고 고백했다. “어리석지 않냐”며 웃었지만 그를 보는 선재는 “제발 스스로를 버리지 좀 말라”며 조언했다. ‘밀회’가 20세의 남자와 40세의 여자가 몸을 섞고 입을 맞추길 반복하는, 그렇고 그런 불륜을 이야기하면서도 여타 ‘막장 드라마’와 달리 고품격으로 분류될 수 있었던 건 바로 이런 부분 때문이었다. 닳고 닳은 한 여인의 삶에 대한 자세에, 앞날이 창창한 올곧은 청년이 일침을 날리는 연출에서 ‘밀회’는 차원이 다른 사랑의 영역을 만들어냈다.

서로에 대한 사랑 없이 시작된 결혼.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이유가 너무 분명했던 박혁권과 김희애의 삶 또한 불륜이다.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국내 드라마계의 큰 손으로 꼽히는 노희경 작가에 따르면 사랑하지 않는 자는 모두 유죄라고 했다. 사랑이야말로 사람이라면 느껴야 할 감정이라는 것. 좋고 싫고 화나고 질투나는 감정의 케미스트리가 남녀 사이에서 일어날 때 진정 살아있음이 증명된다는 뜻일 터다.

이런 부분에서 오혜원과 강준형(박혁권 분) 역시 불륜 관계다. 강준형은 자신의 신분 상승과 안락한 삶을 위해 오혜원을 택했고, 오혜원 역시 그의 ‘러브콜’에 영혼 없는 응답을 보냈다. 그렇게 보내온 세월, 두 사람 사이엔 아이도 없고 각자의 이불을 덮는다. 피아노 좀 친다는 아이들을 볼 때도 강준형은 오혜원에게 인재를 뺏길까 노심초사할 뿐이다. 급기야 애제자인 선재에게 뺏긴 아내를 보면서도 “내가 성공하려면 너가 있어야 한다”고 회유를 하거나 고작 물건을 던지고 호통치는 게 전부였다. “네가 어떻게 날 두고 다른 남자와”라는 논리는, 없었다.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밀회’.
‘밀회’의 한 관계자는 이데일리 스타in에 “마지막으로 치닫을 수록 감독님과 작가님이 하려는 이야기가 집약되는 분위기다. 참 많은 이야기를 풀 수 있을 것 같지만 곁가지로 흐르는 것 없이 하나로 관통되는 메시지에 배우들도 감탄하며 연기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처음에는 19세 나이차가 나는 연상녀와 연하남의 파격멜로에만 시선이 모아져있어서 반감을 갖는 분들도 많았다. 회를 거듭하며 ‘밀회’가 전하려는 이야기가 얼마나 우리 사회와 닮아있는지가 우러나고 있다. ‘밀회’를 단순히 남녀 관계의 불륜에만 집중하지 않고 다각도로 해석하려는 시청자들이 늘어났다는 데 고무적이다”고 덧붙였다.

김희애와 유아인, 이젠 서로가 없인 너무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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