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회’가 건드린 대중의 욕구..‘은밀함’은 늘 옳다

피아노와 침대의 닮은 꼴..격정 멜로의 반전 쾌감
클래식에 대한 본능 자극..어려운 콘텐츠에 대한 도전
상류계층의 찌질함..훔쳐보기 식의 접근으로 조명
  • 등록 2014-03-25 오전 8:57:51

    수정 2014-03-25 오전 9:39:30

밀회 포스터.
[이데일리 스타in 강민정 기자] 종합편성채널 JTBC 월화 미니시리즈 ‘밀회’가 뜨겁다. 24일 방송된 3회 시청률은 광고 시간을 제외하고 유료방송가구 기준으로 3.188%. 표본과 집계 방식이 다른 만큼 직접적인 수치 비교는 어렵지만 같은 시간대 방송되는 KBS2 ‘태양은 가득히’는 3.0%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종편으로서는 단순 수치상으로라도 지상파를 앞질렀다는 데 고무적인 분위기다. 이슈몰이 면에서는 ‘밀회’의 성공이 확연하다. 방송이 하루 이틀 지난 다음까지도 온라인에선 김희애와 유아인의 궁합을 논하느라 바쁘다. 방송 3회만에 시청자들을 매료시킨 ‘밀회’. 이 작품이 건드린 대중의 욕구는 뭘까. ‘은밀함’으로 설명되는 세 가지 관점을 들여다봤다.

밀회 피아노신
◇피아노와 침대의 닮은꼴을 찾다

‘밀회’의 장르는 격정 멜로다. 실제로도 극중에서도 20세의 나이차가 나는 유아인과 김희애가 주인공이다. 뜨거운 장르의 속성을 파격적인 설정이 넘어선 셈이었다. 두 사람의 ‘케미스트리’(화학적 결합)에 대한 호기심은 ‘밀회’ 1,2회 방송에 대한 구미를 당겼다.

‘밀회’는 시청자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오히려 반전으로 충족시켰다. 침대 위에서 필 줄 알았던 격정 멜로의 꽃은 피아노 앞에서 몽우리를 피웠다. 방송 전 하이라이트 영상으로 화제를 모았던 두 사람의 합동 연주 신이 ‘베드신’으로 해석된 것. 스무개의 손가락 끝이 스칠듯 말듯 빠르게 오가는 건반 위는 묘한 느낌을 줬다. 두 사람이 음악을 즐기는 몸짓은 어색함으로 시작해 완벽한 일치로 끝이 났다. 긴장한 듯 몸을 풀며 피아노 위에 손을 올린 두 사람은 연주가 끝난 뒤 땀에 젖은 채 거친 숨을 내쉬며 탈진했다.

‘밀회’의 한 관계자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스토커’에서 주인공이 피아노 연주를 했던 신과 비교하는 시청자들도 많았다”며 “국내 작품 중에서는 특히 피아노라는 음악적인 장치로 섹슈얼한 어필을 시도한 적이 없기 때문에 대중의 몰입도가 컸던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 “피아노와 침대의 닮은꼴을 찾는 방법도 ‘밀회’를 즐기는 포인트가 될 거다”면서 “대놓고 즐기는 것보다 은밀하게 느껴지는 쾌감이 짜릿함을 안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희애(왼쪽)와 박혁권.
◇클래식에 대한 본능을 자극하다

‘밀회’의 주된 배경은 예술산업이다. 서한 예술재단이라는 곳을 중심으로 기획실장(김희애 분), 재단 대학교 피아노 강사(박혁권 분), 천재 피아니스트(유아인 분), 재단 이사장(심혜진 분), 이사장의 의붓 딸(김은혜) 등이 주요 등장인물로 출연한다. 때문에 배경음악으로 쓰이는 노래들도 클래식이 대부분이다. 첫주에 집중적으로 삽입된 곡만 봐도 그렇다. 바흐의 ‘평균율 846번’, 리스트의 ‘파가니니 4번’, 슈베르트의 ‘판타지아’, 베토벤의 ‘열정 소나타’ 등이다.

‘밀회’는 기획 당시만 해도 “클래식은 어렵다”는 고정관념이 팽배한 터라 주변의 우려를 샀다. 멀게 느껴지는 콘텐츠로서 ‘밀회’가 얼마나 시청자들의 귀를 자극할 수 있겠냐는 걱정이었다. 연출을 맡은 안판석 PD는 “어떤 사람이건 꺼려하는 뭔가 대한 성취의 욕구가 있다”며 “클래식도 훌륭한 기회가 주어진다면 충분히 즐길만한 콘텐츠인데 적절한 계기가 없을 뿐”이라고 믿음을 줬다.

안판석 PD의 말대로 대중은 클래식함에 대한 즐길 준비가 돼 있었다. 안판석 PD는 시청자들이 클래식을 ‘볼’ 수 있도록 연출에 접근했다. 피아노 연주자를 담는 화면 각도를 최소 5개 이상으로 설정했다. 곡의 흐름에서 멜로디가 강조하는 부분을 시각적으로 보여줬다. 속도가 빨라질 땐 손가락을, 울림이 강할 땐 피아노 내부 건반의 움직임 혹은 울림 패달을 밟는 발을 비췄다. 음의 변조가 시작되거나 쉬어가는 부분에선 미세하게 자세를 고치는 연주자의 엉덩이를 보여주는 식이었다.

밀회
◇상류계층의 찌질함을 훔쳐보다

‘밀회’가 주는 은밀한 관전 포인트는 상류계층의 찌질함을 훔쳐보는 데도 있다. 배우 심혜진, 김혜은, 김희애로 이어지는 ‘삼각관계’가 그 중심에 있다. 세 사람은 서한예술재단의 핵심인물. 심혜진은 극중 이사장이고 김희애는 기획실장이자 그를 보필하는 인물이다. 김혜은은 극중 김희애의 동창이자 심혜진의 의붓 딸이다. 심혜진과 김혜은은 극중 나이 차가 얼마 나지 않는 엄마와 딸이라 앙숙관계인 두 사람의 세력 다툼이 치열하다.

겉으론 고고하고 품격있는 상위 계층 ‘코스프레’를 하지만 이들의 내면은 다르다. 육두문자가 섞인 욕은 기본이고 화장실에선 머리채를 잡고 싸우곤 한다. 이들의 싸움을 아무렇지도 않게 차분히 중재하는 김희애의 모습에선 ‘늘 벌어지는 일이라 새삼 놀랄 것도 없다’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심혜진은 “‘밀회’의 캐릭터는 유아인과 그의 주변인물을 빼곤 하나같이 화려하다”며 “배경 또한 일반인들과는 단절된 예술 공간이라 굉장히 섬세하고 예민해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들여다보면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구린 풍경’보다도 추악하고, 보통의 찌질함을 넘어서는 어린 영혼들이 존재한다”면서 “그런 겉과 속이 다른 상류계층의 모습이 훔쳐보기 식의 카메라 앵글로 화면에서 표현되기 때문에 ‘은밀하게 들여다보는 식’의 접근이 재미를 주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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