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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SPN 양승준 기자] 소박했지만 울림은 강했다. 김광민, 노영심, 이루마 세 명의 피아니스트가 수놓은 건반의 향연은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했다. 건반 위를 뛰놀던 세 사람의 진심 어린 손들이 만들어낸 선율은 19일 방송된 KBS 2TV '유희열의 스케치북'(이하 '스케치북')을 은은하게 물들였다. 소음으로 학대받은 청세포가 평온을 찾고 정화되는 순간이었다.
'스케치북' 3 피아니스트 특집은 구성의 '승리'였다. 김광민, 노영심, 이루마 세 피아니스트의 개인 연주도 훌륭했지만 둘 혹은 세 사람씩 짝을 이뤄 연주하는 모습은 신선했다. 특히 프로그램 마지막 세 피아니스들의 '학교 가는 길' 협연은 백미였다. 노영심은 멜로디언, 김광민은 기타 그리고 이루마는 첼로를 들고 '학교 가는 길'의 문을 열었고 이후 세 사람은 한 대의 피아노에 앉아 3중주 혹은 피아노를 옮겨 2중주를 하며 건반 위를 뛰놀았다. 세 사람의 천진난만함과 재기가 빛나 즐거움이 만발했다.
만들어줄 줄은 몰랐다.'(dycmsp), '방송 최고였다. 모든 음악 프로에, 예능에, 드라마에, 심지어 라디오까지 아이돌이 넘치는 요즘, 제 눈과 귀가 오랜만에 호사를 누렸다.'(chinheekim)며 찬사를 보냈다.
이날 방송은 앞으로 '스케치북'이 담아가야 할 프로그램의 방향성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기존 가요 순위 프로그램 등 타 음악프로그램은 화제가 되는 가수 중심으로 섭외가 이뤄진다. 물론 '스케치북'도 그랬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기존 '스케치북'은 딜레마에 빠졌다. 2PM 등 인기 가수를 초대해 심야시간대의 시청률을 잡으려 하다 보니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12일 '스케치북'은 2PM 위주로 방송되다 보니 일부 시청자들은 '2PM 콘서트 같았다', ''쇼! 음악중심'이나 '뮤직뱅크', '인기가요'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그룹을 왜 '스케치북'에서까지 봐야하나' 등의 질책을 했다. '스케치북'이 기존 가요 순위프로그램과의 차별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우려에서다.
그러나 '3 피아니스트' 기획은 방향 잃은 '스케치북'에 새로운 나침반이 됐다. '스케치북'이 채워나가야 할 것은 이슈의 가수가 아니라 콘셉트를 바탕으로 한 가수 섭외라는 점이다. 김광민과 노영심 그리고 이루마는 시의성이 있는 뮤지션들은 아니었지만 세 사람이 이날 보여준 공연은 '스케치북'이 아니면 볼 수 없는 독특한 무대였다. 이같은 기획의 참신함이야 말로 자정이 넘은 심야시간에 시청자들을 '스케치북'으로 유혹할 수 있는 최적의 당근이 될 수 있다. '매주 한장 한장 새로움으로 채운다'는 기획의도처럼 어느 때보다 '스케치북' 제작진의 초심이 필요한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