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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앤젤레스=이데일리 SPN 한들 통신원] 일제시대를 겪었던 우리 어머니들은 팬티를 '빤스'라고 했습니다. 형님 팬티도 그렇게, 누이 것도 그렇게 하나로 불렀습니다. 그래서인지 빤스는 일본말인데도 전혀 왜색적으로 들리지 않았습니다.
요즘은 어쩌다 듣게 되면 웃음부터 나옵니다. 빨랫줄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던 삼각, 사각, 그리고 동그란 형형색색의 이미지들과 함께 비라도 올라치면 "얘들아, 빤스 걷어라"라는 어머니의 다급한 음성이 공감각으로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최근 이만수 SK 코치의 '빤스 퍼포먼스'가 화제입니다. 이 코치가 1위를 달리고 있는데도 홈 관중이 없는 것을 보고 선수들에게 "대체 그동안 어떻게 했길래 관중이 이렇게 없느냐 . 열심히 뛰어 앞으로 10경기 내에 3만 관중을 채우면 내가 팬티만 입고 운동장을 뛰겠다"고 농담 섞어 다그친 호통이 발단이 됐습니다.
이 말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진담'화 하고 드디어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판국입니다. 이미 팬들로부터 요상하기 짝이 없는 갖가지 팬티들이 답지하고 있고, SK는 '현실'로 받아들이고 행사를 준비하고 있답니다. 당사자인 이 코치도 팬이 보내 준 야시시한 팬티를 라커에 내걸고 웨이트 트레이닝에 매진하며 결전의 날에 대비해 '몸 다듬기'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 야구 백년사, 아니 세계 야구사에 유례가 없는 '빤스 퍼포먼스' 뉴스를 처음 접했을 때 역시 '이만수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생야구 때부터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파이팅의 이만수' 아니었습니까.
그의 한양대 포수 시절엔 이런 실화도 있었습니다. TV로 중계된 경기였는데 당시 영남대 타자 김종모(현 삼성 코치)가 하도 뒤에서 떠들어대는 통에 집중을 할 수가 없자 "야, 조용히 좀 해"라고 웃으면서 한 이야기가 그대로 전파를 타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공격에서 대타로 등장한 그는 좌월 솔로 홈런을 날렸습니다. 그리고 베이스를 돌면서 3루 측 관중석을 향해 손을 흔들면서 홈인했습니다. 그 때 침통하기 짝이 없었던 덕아웃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한 코치가 혀를 끌끌 차며 하던 말은 아직도 귀에 쟁쟁합니다. "쟤는 혼자서 저 맛에 야구한다니까."
이 코치에 대한 팬들의 사랑과 그의 팬 사랑은 지극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삼성이 대구 팬들의 질타가 두려워 미루고 미뤘던 그의 은퇴를 마침내 확고한 방침으로 정했을 때였습니다.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는 일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구단의 으름장에도 그는 "구단의 뜻에 따르고 싶어도 따를 수가 없다. 너무 많은 팬들이 만류하고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습니다.
지난해 말 10년간의 미국 생활을 걷고 돌아와 줄기차게 '스포테인먼트'를 외치며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그가 이번에 뜬금없는 '빤스 퍼포먼스'를 벌이겠다는 것도 더욱 지극해진 팬 사랑과 자신의 홈페이지에서도 밝혔듯이 침체일로를 걷고 있는 한국 프로야구의 위기를 저 한 몸 던져 타개해내고야 말겠다는 충정의 소산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방법론적으로 아쉽기만 한 물음이 생깁니다. 왜 하필 '빤스 퍼포먼스냐'라는 것입니다. 빤스의 정감 때문이라면 그런 난센스가 없습니다. 그것은 이미 강산이 여섯 번도 더 바뀌어 버린 세월 전의 '구닥다리 버전'입니다.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다년 간 불펜 포수 코치로 활약하면서 쌓아 올린 메이저리그에 정통한 지식과 경험으로 종종 선수들을 기죽이는 이 코치의 화려한 이력과도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무리 좋은 의도와 목표를 향한다고 할지라도 이젠 과정의 온당성을 가르쳐야 하는 게 아닐까요? 이 코치가 예전과 똑같이 매일 신문에서 거듭 확인하는 한국 사회의 여전한 후진성도 바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목표 달성 지상주의에서 비롯된 게 아니었던가요?
또 있습니다. '빤스 퍼포먼스'로 소기의 목적을 이뤘다 칩시다. 그럼 다음엔 더 자극적인 방법이 동원돼야 한다는 것은 불문가지인데 그렇다면 '벌거벗은 임금님' 밖에 없습니다. 그 임금님의 후유증은 유치원생조차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코치님, 진정 '빤스 퍼포먼스'를 하실 작정입니까? 이 코치님의 갸륵한 충정은 이미 팬들에게 전달됐습니다. 목표는 벌써 이루고도 남았습니다. 때문에 이제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빤스 퍼포먼스'를 거두어 주십시오.
그리고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트리플 크라운이란 자존심을 벗어 던지고 메이저리그의 밑바닥에서 몸으로 익힌 지식과 경험을, 후배 선수들과 한국 야구의 모자람을 지적하는 데만 쓰지 말고 함께 끌어 올리는데 귀히 써주기를 바랍니다. 이 코치님의 순수한 한국 야구 사랑과 열정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