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램덩크가 현실이 된 일본농구...부럽기만 한 한국농구(전문가 칼럼)

  • 등록 2023-02-24 오전 8:00:10

    수정 2023-02-24 오전 8:00:10

김유겸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
만화 ‘슬램덩크’가 연재를 시작한 지 30년이 지나 개봉한 ‘퍼스트 슬램덩크’가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대단한 인기다. 관련 컨텐츠의 생성이나 전파와 소비로 보면 열기가 더 뜨겁게 느껴진다. 이 정도면 하나의 사회문화현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퍼스트 슬램덩크가 성공할수록 뭔가 한구석이 허전한 마음이 든다. 슬램덩크 작가가 일본 사람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일본 농구가 부럽다.

25승 1패. 퍼스트 슬램덩크의 절대강자 산왕농구팀 성적이 아니다. 슬램덩크가 출간돼 한일 양국에서 크게 인기를 끌었던 1990년 이후 한일 국가대표 농구팀 상대 전적이다. 이 정도면 양 팀 경기는 해보나마나다.

일본 국가대표팀은 한국 대표팀에게 슬램덩크 주인공 팀 북산이 예선 첫 경기에 가볍게 이긴 팀 정도였다. 문제는 다음 경기다. 일본 국가대표가 하치무라 루이(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와타나베 유타(브루클린 네츠)를 포함한 최정예 멤버로 출전한다면 한국이 이긴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렇게 좋은 NBA 선수를 보유한 강팀이 된 것도 대단하지만 그 과정이 부럽기만 하다.

퍼스트 슬램덩크가 한일 양국 모두 큰 인기를 끌고 있지만 현실 농구에 미치는 영향은 무척 달라 보인다. 마치 90년대 초 한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일본은 농구 만화에 대한 관심이 현실 농구로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슬램덩크 실사판이라 할 수 있는 유타 와타나베나 루이 하치무라 같은 선수들 인기는 어느 때 보다도 높다. 이 선수들은 슬램덩크 주인공처럼 일본 고교 농구를 제패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NBA 무대 진출에 성공했다. 농구 만화 인기를 뒷받침 해줄만한 현실 농구가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농구만화에 대한 열기가 이토록 뜨거운데 실제 농구에 대한 관심은 신기할 정도로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퍼스트 슬램덩크 바람이 한국 농구에도 조금은 불어주길 기대했는데 결과는 그렇지 않다.

농구만화 슬램덩크의 무대 일본에는 있고 한국에는 없는 것들이 있다. 덕분에 일본 농구는 이제 우리나라가 이기기 어려운 상대가 되었다.

슬램덩크의 배경은 일본 고교농구다. 주인공 팀 북산은 64개 팀이 참가한 지역예선을 어렵게 통과해서 지역대표 64개 팀이 모인 전국대회에 참가한다. 퍼스트 슬램덩크는 이 전국대회 3회전에서 만난 전국 최강 산왕고와 경기가 주무대다. 일본에는 이렇게 많은 고교 농구팀이 있다. 우리나라는 일본 지역예선 참가팀 수의 절반도 안되는 30여개가 전부다. 이렇다 보니 차이가 나는 건 성인 국가대표만인 아니다. 엘리트 선수 말고 대학이나 동아리 팀 교류전을 해도 일본 팀한테 미안할 정도로 수준 차이가 난다.

일본은 꾸준히 꿈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한 선수들이 있었다. 와타나베 유타도, 하치무라 루이 이전에 마츠이 케이, 타부세 유타 등 슬램덩크에 영감을 받은 일본선수들은 꾸준히 미국 농구에 진출했다. 우리나라보다도 뒤떨어졌던 일본 농구 수준을 생각해보면 슬램덩크에 나온 미국 진출은 공상과학영화 내용에 가깝다.

하지만 일본 선수들은 꾸준히 문을 두드렸고 팬들은 이들을 응원했다. 작은 성공과 실패를 거듭한 끝에 일본 대표팀은 이제 NBA에서 뛰는 스타플레이어가 이끄는 팀이 됐다. 한국 농구 유망주 이현중, 여준석이 당장 NBA에 진출하지 못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길 바라는 이유다. 퍼스트 슬램덩크의 인기와 일본에 대한 우리의 경쟁심이 한국 중고 농구팀 지원과 유망주 미국 진출로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김유겸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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