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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이름으로 곡을 내는 게 버킷리스트(죽기 전 해보고 싶은 일들을 적은 목록) 중 하나였어요. 대학생 때 언론인과 음악인 두 길을 놓고 고민하다 포기한 꿈이었거든요.”
강경래 팀장은 올해 16년차 기자다. 전자업체를 10년간 담당하면서 대기업뿐 아니라 중견, 중소기업으로 취재 범위를 넓혀 자신의 입지를 탄탄하게 다졌다.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을 거쳐 대기업으로 선순환 구조를 이루는 데 일조를 한다는 것에 자부심도 내비쳤다.
음악은 그런 그에게 아쉬움이었다. 어려서부터 레드 재플린, 본조비, 김경호 등의 록음악을 좋아했고 고교 시절 교내 록밴드 동아리의 영입제의를 받을 정도로 타고난 성량도 있었다. 대학 1학년 때부터 언론사 입사 준비를 하면서도 낮에는 공부, 밤에는 틈나는 대로 음악을 했다. 혼자 곡을 쓰고 노래를 부르다 2001년 광운대 주최 대학생 창작 가요제에 출전해 작사상을 받기도 했다.
“그 동안은 휴가를 가족을 위한 봉사의 시간으로 썼거든요. 온전히 저만을 위한 시간을 가진 건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지금 당장 죽는다면 뭐가 제일 아쉬울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예전에 작업했던 곡들을 꺼내보게 만들었죠.”
과거에는 앨범 한 장에 최소 7~8곡은 담아야 했지만 지금은 한 곡의 음원이라도 발표를 할 수 있게 바뀌었다는 점에서 용기를 냈다. 인디밴드 흔적, 옥상거지 등으로 활동한 최상언을 프로듀서로 소개받았다. ‘아픈 기억’에 대한 최상언 프로듀서의 첫 반응은 “옛날 스타일이네요”였다. 강경래 팀장은 “최상언 프로듀서가 ‘요즘 스타일로 편곡할까요’라고 했는데 그냥 원곡 스타일로 가고 싶다고 했고 그렇게 곡을 완성했다”고 설명했다.
‘옛날 스타일’을 원했던 것은 IMF 세대로 불리는 지금의 3040세대에게 위로를 주고 싶다는 생각에서다. 한국의 경제위기와 세기말 분위기 속 위축됐던 당시 젊은이들에게 하나의 분출구, 돌파구 역할을 했던 록음악으로 향수와 힐링을 선사하고 싶다고 했다.
강 팀장은 ‘아픈 기억’이 호응을 얻으면 과거 써놓은 나머지 3곡도 발매하고 싶다는 포부는 있다.
“100세 시대잖아요. 과거보다 인생을 사는 호흡이 길어졌죠. 지금 하는 일이 충실한 것도 중요하지만 일 이외의 자아실현 방법을 찾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그게 어떤 것이든 꼭 저같은 설렘을 느껴보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