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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SPN 김용운 기자] 29일 오후 이제 마흔을 갓 넘긴 남자가 서울 강남 논현동 자택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그리고 이는 '최진영 사망'이란 제목 아래 속보로 전해졌다. 인터넷에 제목만 나온 기사를 접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은 믿지 않았다.
지난 2008년 10월2일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서울 서초구 잠원동 자택에서 숨진 40세 여자에 대한 속보가 출근 시간이었던 오전 8시께 인터넷에 올라왔다. 제목은 '최진실 사망 자살 추정'이었다. 처음 기사를 접한 사람들은 오보라고 생각했지만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사실로 밝혀졌다.
'국민 요정', '국민 배우' 최진실의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으로 유명했던, 그리고 촉망받는 연기자이자 가수였던 최진영이 29일 자택에서 이승의 삶을 마쳤다. 지난 20년간 한국에서 가장 관심을 받았던 남매는 결국 불혹의 나이에 이 세상의 모든 인연과 작별을 고했다. 남매의 삶이 비극으로 끝난 것이다.
‘남매의 비극’이 보다 가슴 아픈 것은 이들의 우애가 평소 각별했기 때문이다. 최진실은 생전 사석에서 결혼하지 않고 사는 동생에 대한 걱정을 많이 했다. 지난 2008년 4월 사석에서 만난 최진실은 “진영이만 잘 되었으면 좋겠다”며 “진영이 만큼은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사는 모습을 봤으면 근심이 없겠다”고 말하며 목소리까지 울먹였다.
최진영 역시 누나를 보호하는 데 몸을 사리지 않았다. 말 많고 탈 많은 연예계에서 누나에 대한 억측들이 난무하면 최진영은 이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최진영이 연루된 폭행사건의 배후에는 누나를 모욕하는 이들에 대한 최진영의 분노가 있었다. 최진영은 최진실의 죽음 이후 늦은 나이에 다시 공부를 시작해 대학진학을 했다. 누나의 뜻이었다는 이유에서였다.
아무도 예기치 못했던 ‘남매의 비극’은 한국 연예계에 가장 기구한 운명으로 두고두고 회자 될 터다.
하여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기 전에 고인에 대한 원망을 먼저 적는다. 그에게는 지켜야 할 어린 영혼 둘이 있었다. 하늘에 있는 최진실이 그곳에서 다시 동생을 만난다면 이승에서 흘린 눈물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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