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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SPN 양승준기자] 작가 김수현이 변했다. KBS 2TV ‘엄마가 뿔났다’(이하 '엄뿔')는 김수현 작가의 변화를 압축적으로 감지할 수 있는 바로미터였다.
‘목욕탕집 남자들’, ‘부모님 전상서’ 등을 통해 보여준 김수현 작가의 기존 홈드라마와 달리 ‘엄뿔’은 주연 캐릭터 설정의 변화, 독백의 비중 등에서 변화의 길을 걷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수현 작가는 ‘엄뿔’을 통해 중년과 노인을 주인공 삼아 드라마를 전개했다. 물론 김수현 작가는 기존 홈드라마에서 다양한 세대의 고민을 비교적 균형있게 아우르며 에피소드를 전개해왔지만 이번 ‘엄뿔’에서는 한자(김혜자 분)라는 엄마를 드라마의 전면에 내세워 가부장적 남성 중심으로 드라마를 전개해왔던 기존 노선을 달리했다. 또 드라마 후반에는 충복(이순재 분)과 영숙(전양자 분)이 펼치는 황혼의 로맨스를 비중있게 다뤄 극 전개의 중요한 축을 맡게 했다.
기존 김수현 작가의 홈드라마 속 부모는 자식들에게 문제 제기를 하거나 갈등을 일으키는 캐릭터가 아니었다. ‘목욕탕집 남자들’과 ‘부모님 전상서’에서 볼 수 있듯 부모와 조부모들은 자식들의 상처를 보듬으며 그들의 갈등을 봉합하는 역할을 맡거나 설사 자신들로 인해 자식들의 갈등이 불거졌다 해도 대부분 '내 탓이오'로 일관하며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은 말을 쏟아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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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엄뿔’ 속 한자는 당당하게 자신의 욕망을 찾기 위해 집을 떠났다. 그리고는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어떡하고”라는 자식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따로 집을 얻어 서예를 배우는 등 문화 생활에 전념했다. 기존 김수현의 드라마 속 부모 캐릭터와 비교하면 참으로 발칙한(?) 캐릭터인 것이다.
‘엄뿔’의 파격성은 엄마의 가출에서 끝나지 않았다. 김수현 작가는 그동안 TV에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던 황혼의 성을 충복(이순재 분)과 영숙(전양자 분)의 로맨스를 통해 과감하게 드러냈다. 심지어 김수현 작가는 충복과 영숙이 뽀뽀를 하는 장면을 넣어 ‘김수현 드라마 맞아?’라는 충격을 주기도 했다. 김희애가 주연으로 출연한 ‘내 남자의 여자’에서 친구의 남편을 빼앗는 과감한 소재를 다루기는 했지만 기존 김수현 작가의 홈드라마에서 노인의 성을 다룬 일은 전무했다.
이동연 문화평론가는 김수현 작가의 이런 변화에 대해 "기존에 항상 윤리의 대상이었던 노인에 대한 환상이 깨지며 노인을 신적인 존재가 아닌 현실적인 인물로 조명하는 것은 현재 영화와 드라마의 추세”라고 설명했다.
’엄뿔’은 유독 한자의 독백이 빛을 발한 드라마다. 물론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중 독백이 처음 등장한 드라마는 ‘엄뿔’이 아니라 ‘부모님 전상서’였다. 하지만 ‘부모님 전상서’ 때 아버지 안재효(송재호 분)의 독백은 드라마 엔딩에 딱 한번 나왔고, 돌아가신 조부모에게 편지를 쓰는 대목에서 나오는 안재효의 독백은 다분히 그간 일어났던 상황을 정리하는 설명적 기능이 강했다.
‘엄뿔’의 한 제작진은 극중 한자의 독백에 대해 “사실 우리나라 엄마들 중 자식과 며느리에게 서운함 점을 앞에서 다 토해내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며 “평소 불만은 있지만 차마 말 못하고 가슴으로 삭이고만 있는 엄마들의 모습을 좀 더 현실적으로 그리기 위해 김수현 작가가 독백으로 처리한 것 같다”고 전했다.
‘엄뿔’ 속 한자의 독백은 시청자로 하여금 '감정적 이입'을 유도한다. 마치 소설을 읽는 것처럼 극중 캐릭터의 생각에 자신을 앉힘으로써 몰입해 가는 것이다. 극중 캐릭터의 이야기이지만 '내 얘기'로 승화해 시청자들로부터 감정적 동화 효과를 노리는 '독백'의 활용. 김수현 작가는 ‘엄뿔’에서 그렇게 변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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