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N테마록]①'AG金 도전' 남자농구, 수비·높이에 올인

  • 등록 2010-09-18 오전 11:09:59

    수정 2010-09-18 오전 11:55:28

▲ 김주성이 연습경기에서 슛을 던지고 있다. 사진=KBL
[이데일리 SPN 이석무 기자] 한국 남자농구는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에서 중국을 꺾고 금메달을 딴 이후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20년만에 감격의 우승을 차지, 화려한 전성기를 열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아시아 정상이라는 자만심에 취해 '우물안 개구리'로 지내는 사이 아시아 농구는 엄청나게 발전했다. '절대강자' 중국은 이미 아시아무대를 넘어 세계수준으로 발돋움했고 레바논, 요르단, 이란 등도 순식간에 한국을 추월했다.

이제는 아시아에서 4강권에 드는 것 조차 벅찰 지경이 됐다.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는 48년만에 노메달(5위)에 그쳤고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는 예선탈락을 맛봤다. 심지어 2009년 톈진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는 역대 최악의 성적인 7위에 머무는 수모를 맛봤다.

국내 프로무대에서 수억원씩의 연봉을 받는 선수들이 국제대회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자 팬들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프로농구의 인기가 점점 추락하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국제대회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프로농구도 없다는 위기감이 파도처럼 밀려들어왔다.

그런 위기감은 발빠른 준비로 이어졌다. 그동안 안이하게 운영돼 말도 많았던 대표팀은 전혀 다른 환경을 맞이했다. 지난 시즌 울산 모비스를 챔피언으로 이끈 유재학 감독을 일찌감치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했고 일찌감치 대표팀을 소집해 강훈련에 돌입했다.

무엇보다 NBA의 전설적인 감독 레니 윌킨스를 기술고문으로 영입했고 두 차례나 미국 전지훈련을 실시한 것은 가장 큰 변화였다. 구태의연한 농구로는 아시아 정상을 되찾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었다.

대표팀은 그동안 계속된 국내 합숙훈련과 두 차례 미국 전지훈련을 통해 알차게 손발을 맞췄다. 치열한 내부 경쟁도 벌어졌다. 계속된 훈련을 통해 유재학 감독과 대표팀이 내린 결론은 수비와 높이였다.

이미 신장과 기술에서 앞선 아시아 라이벌들을 상대하기 위해선 빠르고 끈질기고 조직화된 수비만이 해답이었다. 수비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선 그에 걸맞는 높이가 절실했다. 지난 6일 대표팀 엔트리 13명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같은 생각을 잘 읽을 수 있다.

유재학 감독은 한 명만 뽑을 수 있는 혼혈선수로 개인기와 득점력을 갖춘 전태풍을 포기하고 키가 크고 몸싸움이 좋은 이승준(서울 삼성)을 귀화선수 한 자리에 선발했다. 전태풍의 기량은 아쉽지만 상대 빅맨과 1대1로 맞설 수 있는 이승준의 힘과 높이가 더 절실했다.

221cm의 최장신센터 하승진(전주 KCC)도 포기할 수 없었다. 여전히 발목과 아킬레스건이 정상이 아니지만 그의 엄청난 높이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218cm나 되는 이란의 하메드 하다디를 막을 수 있는 선수는 현실적으로 하승진 뿐이다.

유재학 감독은 "한국 농구가 장점을 살리려면 수비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 어쩔수 없이 수비농구로 승부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다. 유재학 감독 입장에서도 이같은 선택은 고육지책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골밑을 강화하기는 했지만 정작 외곽에서 득점과 패스를 해줄 선수가 보이지 않는다. 방성윤 처럼 폭발적인 득점력을 갖춘 선수도, 김승현 이상민 처럼 절묘한 패스를 할 수 있는 선수도 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유재학 감독은 전태풍을 포기했을 때 팬들로부터 만만치않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렇지만 유재학 감독의 소신은 차돌처럼 단단하다. 수비와 높이를 포기하고 예전처럼 3점슛에 의존해서는 결코 승산이 없다는 것이다.

유재학 감독은 최근 인터뷰에서 "중동이나 중국 빅맨들의 신장이 우리 선수들보다 크고 체격 조건도 앞선다. 결국 우리로선 수적인 우세를 앞세워 인해전술을 펼칠 수밖에 없다"라며 "빅맨이 5명이나 포함된 것은 높이에 대한 대비책이다. 농구는 골밑에서 이겨야 승리할 가능성이 높은 경기다"고 강조했다.

어쨌든 이번 광저우 아시안게임은 한국 농구의 운명이 걸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칫 이번에도 졸전을 펼친다면 농구에 대한 팬들의 외면은 더욱 가속화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만큼 이번 농구대표팀의 어깨는 어느 때보다 무겁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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