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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1. 한여름 뙤약볕이 따갑던 8월 어느날. 두산 포수 홍성흔은 후배 김진수에게 부탁 한가지를 했다. "진수야. 형이 송구하는 것 좀 봐줄래?"
홍성흔은 1999년 입단 이후 줄곧 두산 안방을 지켜온 대표 포수다. 반면 김진수는 고등학교 시절 제법 잘 나가는 선수였지만 프로 입문 후엔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백업 포수.
그러나 홍성흔은 그런 후배에게 고개 숙여 가르침을 청했다. "김진수가 송구에 대한 기본이 잘 돼있기 때문"이 유일한 이유였다.
당시 홍성흔은 2루 송구에 대한 자신감과 감을 모두 잃어버린 상태였다. 지난해 오른 팔꿈치 수술을 한 이후 기존의 폼이 모두 흐트러진 탓이다. 갑자기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게 된다는 투수들의 병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처럼 제대로 공을 뿌리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팀 내에서도 "이제 포수로는 끝났다"고 수군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홍성흔은 포기하지 않았다. 김진수에게 배움을 청한 이후 남 몰래 구슬땀을 흘렸다. 홈 경기 훈련 시작하기 1시간 전과 경기 후 2시간동안 개인 교습을 했다.
#2. 찬바람이 강하게 부는 경희대 수원 야구장. 홍성흔은 시즌이 끝난 뒤 자청해 경희대 야구부 숙소에 들어갔다. 자율 훈련 기간동안 튼실히 몸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시즌 내내 떨어져 있던 가족들과 또 한번 생이별을 겪어야 했지만 더 큰 꿈을 위해 이를 악물고 땀을 흘리고 있다.
개인 훈련을 하고 남는 시간엔 3명의 후배 포수들과 땀을 흘리고 있다. 아마추어 야구부엔 제대로 된 배터리 코치가 전무한 상황. 기본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후배들에게 포수란 무엇인지를 알려주기 위해 노력중이다.
얼마 전, 그의 미니 홈피에 그의 후배 중 한명이 글을 남겼다. "길을 찾지 못해 야구를 그만두려 했었습니다. 하지만 선배님 덕분에 다시 시작할 힘이 생겼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홍성흔은 "겉으론 계속 웃고 있었지만 지난 1년간 너무나 힘들었다. 그동안 쌓아왔던 것들이 모두 사라진 고통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며 "하지만 포기하지 않으니 다시 길이 보였다. 진수에게 배우고 후배들을 가르치며 나도 공부하고 있다. 이제 다시 포수 홍성흔으로 돌아온 느낌이다. 애써 되찾은 것을 잃지 않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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