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의 반란 “이번엔 야구다”

  • 등록 2010-08-11 오전 8:09:05

    수정 2010-08-11 오전 8:09:05

[경향닷컴 제공] 1회말 무사만루. 질끈 동여맨 머리를 등 뒤로 늘어뜨린 4번타자가 타석에 섰다. 타자는 알루미늄 배트로 공을 가볍게 밀어 안타를 만들었고 주자 2명이 홈에 들어왔다. “나이스! 좋았어!” 더그아웃에서 터져 나오는 동료 선수들의 새된 목소리. 입고 있는 유니폼엔 ‘KOREA’ 다섯 글자가 선명하다. 이들은 오는 12일부터 베네수엘라에서 열리는 제4회 세계여자야구월드컵에 참가할 한국 대표팀이다.

세계여자야구월드컵은 2년마다 한 번씩 개최되는 여자 야구인들의 대회다. 한국은 2008년 3회 대회에서 8개팀 중 6위를 차지했고 이번이 두 번째 출전이다. 지난 7월 전국여자야구대회를 통해 국가대표 19명이 새롭게 선발됐다.

말복인 지난 8일 경기 구리의 LG 챔피언스파크. 선수들은 땡볕 아래서 땀을 줄줄 흘리며 할아버지 야구팀 ‘노노야구단’과의 연습 경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대표팀은 여자축구가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 여자월드컵에서 3위를 차지하며 파란을 일으켰듯 여자야구도 이번 대회에서 선전해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겠다는 각오다.

“코치들이 물 마실 시간도 안 주시네요.” 주장을 맡고 있는 내야수 김주현(40)이 이마 위의 땀을 훔치며 말했다. 대표팀은 모두 여자 사회인 야구팀 소속. 스무살 넘어 취미로 시작한 운동이다보니 기본기를 체계적으로 배운 선수가 없다.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 대표팀을 이끌었던 주성노 감독과 최주억 코치(전 OB코치), 최정우 코치(전 LG코치)로부터 투구와 타격, 수비 등을 기초부터 다시 익히고 있다.

10년 경력의 카레이서 출신 김주현은 “직장인 선수가 많아 평일 야간과 주말에만 훈련하고 있다. 평소 잠이 늘 부족한데 훈련하는 날이면 눈이 번쩍번쩍 뜨일 정도로 야구가 재미있다”고 했다.

현재 전국의 여자 사회인 야구팀은 모두 25개로 이 중 23팀이 한국여자야구연맹에 등록돼 있다. 팀당 소속 선수는 25~30명 정도. 6~7년 전만 해도 9명 라인업을 완성하는 데 2년이 걸렸지만 야구 인기가 높아진 요즘은 팀원 모집이 순식간에 끝난다. 조만간 서울 송파와 경기 안양, 파주에서 신생 여자팀이 출범할 예정이다.

프로 선수들이 아니기 때문에 대표팀 구성원의 이력과 나이는 제각각이다. 가정주부와 대학원생, 컴퓨터 프로그래머, 학생, 자영업자 등 20대부터 40대까지의 여자들이 모여 있다. 포수 왕종연(28)은 중국 소프트볼 대표였지만 한국에서 야구를 계속하고 싶어 귀화했다. 앉은 자세에서도 송구가 강하고 정확해 별명이 ‘앉아쏴’다. 지난해 결혼한 새신랑이 훈련에 따라나올 만큼 가족들이 협조적이다. 왼손투수 명현삼(31)은 카이스트에서 항공우주공학을 전공하고 있는 대학원생. 그는 “취미생활을 열심히 했을 뿐인데 덜컥 국가대표까지 됐다.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웃었다.

대표팀은 지금까지 치른 5번의 연습경기에서 중학생팀과 노노야구단을 상대로 2승을 거뒀다. 11개국이 참가하는 이번 월드컵에서는 7~8위에 오르는 게 목표다. 2개조로 나뉘어 치러지는 조별예선에서 쿠바, 일본, 미국, 푸에르토리코 등 강호들과 맞붙어야 하기 때문에 4강 진입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주성노 감독은 “여자 선수들의 열정은 프로 선수들이 보고 배워야 할 정도로 뜨겁다”며 “선수들의 기량이 나날이 좋아지고 있기 때문에 한국 여자야구는 머지않아 크게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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