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지금…아직도 은둔중

호텔은 외딴곳… 훈련은 빈민가 한복판 철통보안 경기장서…

철조망 둘러쳐진 훈련장, 사진 찍자 경비가 달려와… 정대세 "거기 좀 무서워요"
  • 등록 2010-06-04 오전 8:02:47

    수정 2010-06-04 오전 8:02:47

[조선일보 제공] "국가 대표팀이 훈련할 만한 곳은 아닌 것 같은데…." 자동차로 기자를 안내하던 교민 안영근씨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차량이 동네 안으로 들어갈수록 무너져 내린 벽돌집과 쓰레기 더미 등 전형적인 빈민가 모습이 드러났다. 44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북한 축구팀이 훈련을 하는 남아공 이스트랜드시(市) 템비사(Tembisa) 지역의 풍경이었다. 요하네스버그에서 자동차로 30분이 걸리는 곳이었다.

템비사는 요하네스버그의 소웨토(Soweto)와 함께 가우텡(Gauteng)주(州)의 대표적인 흑인 집단 거주지역이다. 다른 나라 월드컵 대표팀이 쾌적하고 안전한 대학 캠퍼스나 리조트시설을 이용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북한은 스스로 빈민가 속으로 들어가 있었다.

3일(한국 시각) 찾아간 한낮의 템비사는 수많은 흑인으로 활기가 넘쳤다. 백인과 동양인은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주민들은 낯선 동양인의 출현에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템비사의 한복판에 북한 대표팀의 훈련장인 마쿠롱(Makulong) 스타디움이 있었다. 기자를 본 남아공 아이들이 '코리아'를 외쳤다. 아이들은 한국과 북한을 구별하지 못했지만 지난 2일부터 이곳에서 훈련을 시작한 북한 팀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스타디움의 정문은 잠겨 있었다. 기자를 보자 정문의 보안요원은 "북한 팀 외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다. 그들은 오후 5시에 올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라운드를 둘러싼 담벼락을 철조망이 휘감고 있었다. 외부 노출을 피하기에는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철조망 너머로 사진을 찍자 보안요원이 카메라를 뺏으려 했다. "경찰을 부르겠다"며 엄포를 놓기도 했다. '북한 팀의 요청이냐'고 하자 '그렇다'고 했다.

북한 선수들을 만나기 위해 숙소인 프로티아(Protea)호텔로 향했다. 4성급인 이 호텔은 훈련장에서 자동차로 30분쯤 떨어진 미드랜드 지역에 위치해 있었다. 한적한 곳에 있는 호텔 로비에는 대형 인공기 석 장이 걸려 있었고, 20여명의 경찰이 대기 중이었다.

오후 4시 20분쯤 북한 김정훈 감독이 로비에 나타났다. 기자가 "훈련은 잘되고 있습니까" 하고 인사를 하자 그는 "우리가 이런 데서 서로 이야기하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라며 답변을 피했다. 선수들도 기자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

최근 4년 계약을 맺은 이탈리아 레지아(Legea) 의류를 입은 북한 선수들 사이로 검은색 나이키 유니폼의 정대세 선수가 눈에 띄었다. 재일교포 출신인 정대세에게 "컨디션 좋으냐"고 말을 걸자 환하게 웃으며 "그리스전 보셨죠?"라고 답했다. 그는 지난달 26일 그리스와의 평가전에서 두 골을 터뜨렸다. 정대세는 "본선에서 한 경기 한 골이라는 약속을 꼭 지키겠다"며 "우리 조에선 브라질과 북한이 (16강에) 올라갈 것"이라고 했다. 자신만만해하는 정대세에게 북한팀의 훈련장 얘기를 꺼내자 "거기 좀 무서워요"라며 웃었다. 같은 재일교포인 안영학 선수는 "세계를 놀라게 하고 싶다"며 버스에 올랐다. 다른 북한 선수들은 별다른 대화 없이 창밖을 응시했다. 훈련장으로 떠나는 북한 선수단 버스를 기자도 뒤쫓았으나 마쿠롱 스타디움의 철문은 북한 선수들이 모두 들어가자 다시 굳게 닫혔다.

지금이 겨울이라는 남아공은 6시쯤 되자 땅거미가 내렸다. 기자와 동행한 안영근씨는 "이 지역도 어두워지면 경찰이 힘을 쓰지 못한다. 돌아가는 게 좋겠다"고 했다. 북한팀이 굳이 '우범지역'에서 야간훈련을 하는 이유가 아직도 이들이 외부와 격리되기를 원하기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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