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스타’들도 밴쿠버에서 속속 배출되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많은 팬들은 4년 전 토리노에서 한국의 금메달(6개)을 모두 책임진 두 선수를 잊지 못한다. 바로 국내 첫 ‘올림픽 3관왕’ 쇼트트랙의 안현수(25·성남시청)와 진선유(22·여·단국대)다.
◆2008년, 한국 쇼트트랙의 비극
지난 2008년 초. 한국 쇼트트랙은 허무하게 남녀 에이스를 잃었다. 그해 1월 안현수가 태릉선수촌에서 훈련 도중에 왼쪽 무릎을 다치며 쓰러졌다. 2월에는 진선유가 중국 선수에 밀려넘어져 오른쪽 발목 부상을 당했다. 두 선수 모두 같은해 3월의 세계선수권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이후 두 선수에게 봄은 찾아오지 않았다. 이듬해 4월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안현수와 진선유는 나란히 탈락했다. 부상의 공백을 극복하기에는 주어진 시간이 모자랐다.
두 사람이 함께 출전한 국제대회에서 한국 쇼트트랙은 ‘무적’이었다.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한국이 역대 최고 성적을 낸 것은, 순전히 노랑 모자와 파랑 유니폼을 입고 호쾌하게 상대 선수를 따라잡던 쇼트트랙과 두 선수의 힘이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나 밴쿠버 동계올림픽이 시작됐지만, 팬들은 두 선수의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안현수, 진선유, 둘 다 20대 초·중반으로, 다시 못올 전성기의 나이라는 점에서 더 아쉽다.
밴쿠버 대회도 후반에 접어든 23일, 진선유와 안현수를 차례로 만났다. 두 선수는 각기 다른 장소에서 같은 꿈을 바라보며 땀을 흘리고 있었다.
◆안현수, “올해 들어 통증 완전히 사라져, 경기 감각 끌어올리는 게 목표”
23일 오후에 만난 안현수는 경기 성남시 탄천종합운동장에서 훈련을 준비하고 있었다. 트레이드 마크였던 노란색 파마 머리는 짧은 검정 머리로 다듬은 상태였다. 전체적으로 차분했고, 담담해 보였다.
안현수는 매일 오전·오후 훈련을 하고 있다. 하루 일과는 ‘훈련-휴식-훈련-휴식’이다. “지루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안현수는 “워낙 익숙한 생활이다.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지금껏 이렇게 지냈다”고 했다.
근황을 궁금해하는 팬들이 많아요.
“동계올림픽이 시작되니까, 예전 팬들이 기억해주시는 것 같아요. 요즘은 숙소 생활을 하고 있어요. 오전 5시30분쯤 일어나서 오전 9시까지 오전 훈련. 조금 쉬다가 오후 3시30분부터 또 9시까지 훈련하고 있습니다.”
-부상 부위의 상태는 어떤가요?
“지금은 통증이 없어요. 올해 들어서 통증이 사라진 것 같아요.”
-2008년 1월에 부상을 당했죠?
“세계선수권을 앞두고 태릉 선수촌에서 혼자 훈련을 하다가 (실수로) 넘어졌어요. 펜스에 왼쪽 무릎을 부딪혔는데 병원에 가보니까 슬개골이 산산조각났더군요.”
-부상은 처음이었나요?
“팔을 다친 적은 있어요. 그것 외에는 어디가 찢어진 적도 거의 없었는데, 선수생활하면서 입은 부상 중에는 이번이 제일 컸죠.”
-부상의 여파가 이렇게 오래 가리라고 예상했습니까.
“1년동안 수술을 4차례나 받았어요. 지난해 2월 수술이 마지막이었죠. 그해 4월에 올림픽 대표 선발전이 열렸는데, 준비할 시간이 별로 없었어요. 수술 후에도 재활훈련은 했는데, 재차 수술을 받는 바람에 운동 효과가 없었어요.”
-심적으로 괴롭지 않았나요? 2003~2007년 세계선수권에서 쌓은 개인종합 연속우승 기록도 중단됐는데.
“아쉬웠죠. 결국 올림픽도 못 나갔고 그래도 방황하거나 그러진 않았던 것 같아요. 부모님이 옆에서 응원 많이 해주셨고, 빨리 예전 몸을 되찾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기량이) 제일 좋았을 때를 100으로 잡으면, 지금은 어느 정도쯤 됩니까?
“70~80까지는 올라온 것 같아요. 나머지는 경기를 하면서 채워나가야 할 부분이죠. 부상 부위에 통증은 사라졌는데, 경기를 오래 쉬어서 감각이 너무 떨어진 상태예요. 다른 선수들이 어떻게 움직일지 감도 잘 안잡히더라고요.”
◆“밴쿠버 올림픽, TV로 지켜보기 아쉬워”
-올림픽 대표 선발전을 너무 일찍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더군요. 지난해 연말에 뽑은 나라들도 있고
“글쎄요, 대표 선발 일정은 나라마다 다르고, 때에 따라 다르니까요.”
-만약 지금 몸 상태로 올림픽에 나갔다면, 어땠을까요?
“음 그건 모르겠어요. 자신 없네요.”
-밴쿠버 올림픽 중계는 보나요?
“물론이죠. 오전 훈련 끝나고 나서 챙겨봐요.”
-TV로 지켜보는 게 아쉽진 않나요?
“그렇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죠.”
-아직까지 남자 대표팀은 성적이 아주 좋습니다.
“올림픽 시작하기 전에 다들 몸 상태도 좋고 훈련 열심히 했다는 말을 들었어요. 충분히 좋은 성적을 내리라고 예상했어요. (금메달 2관왕인) 이정수는 대표팀 후배인데, 잘 타는 선수였어요.”
-이번처럼 우리 선수 모두 결승에 오르면, 코치 머리가 복잡할 것 같은데요?
“코치가 특별히 지시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어차피 경기는 선수 개개인이 판단할 문제니까요.”
-지금 밴쿠버에 있는 선수들과 연락은 주고 받나요?
“그러진 않았어요. 아무래도 후배들이 많으니까요.”
한때 안현수와 이호석(24·경희대)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말이 있었다. 2006 토리노 올림픽 이후에는 쇼트트랙 대표팀 내부의 ‘파벌 싸움’이 불거지기도 했다.
-이호석 선수와 사이가 좋지 않다는 말이 있던데요.
“안 그래요. 호석이랑은 대표팀 생활하기 전부터 같이 경기하고 훈련한 사이예요. 대표팀에 들어온 뒤로는, 아시겠지만 서로 훈련 따로 했어요. 저는 여자팀 코치 밑에서, 호석이는 남자팀 코치 밑에서. 애초 시작이 그랬으니까, 서로 마주칠 일 자체가 없었어요.”
-파벌 다툼이 심했나요?
-대표팀 선수 중에서 마음을 다 털어놓고 지내는 동료가 있다면?
“선수들끼리 완전히 마음을 털어놓을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같은 대표팀이라도 어쨌든 경쟁을 해야하는 입장이니까. 선수 생활을 하는 한 어렵지 않을까요.”
◆4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부활 노려
4년 전 토리노 대회에서 안현수는 1000m, 1500m, 5000m계주에서 금메달을 휩쓸었다. 500m에서도 동메달을 추가했다.
가장 극적인 장면은 5000m계주 결승이었다. 당시 한국은 1위 캐나다를 따라잡지 못한 채 마지막 1바퀴를 남겨두고 있었다. 마지막 주자 안현수는 코너에서 승부를 걸었다. 보는 이의 손에도 땀이 났다. 결과는 짜릿한 역전 1위. 1992년 알베르빌 올림픽 이후 14년만에 되찾은 남자 계주 금메달이었다.
-2006년 올림픽, 자주 떠오르나요?
“물론이죠. 그때 동영상은 워낙 여기저기서 많이 틀어줘서(웃음).”
만약 이번 올림픽에서 딱 한 종목에 출전할 수 있다면, 뭘 뛰고 싶나요?
“1500m겠죠. 가장 자신 있는 종목이니까요. 1500m는 일정상 제일 먼저 치러지는 종목이라서, 예전에도 가장 중점을 뒀어요. 첫 경기를 잘 해야 흐름이 이어지니까요.”
-앞으로 계획은?
“일단 4월에 열리는 대표선발전이 가장 중요하죠. 거기에 맞춰서 훈련하고 있어요.”
-2014년 소치 올림픽에서 모습을 볼 수 있을까요?
“4년 뒤면 서른이 돼요. 적지 않은 나이죠. 몸 관리만 잘 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은데, 우선 대표팀에 뽑혀야겠죠.”
-미국의 안톤 오노도 밴쿠버 대회에 28세의 나이로 출전했는데.
“예, 맞아요.”
-오노라는 선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솔직히 저는 특정 선수한테 악감정을 가져본 적은 없어요. 다른 건 모르겠고, 오노는 기술 면에서는 배울 점이 많은 선수라고 봐요.”
-앞으로 500m, 5000m계주가 남았는데, 어떻게 전망합니까?
“500m도 그렇고, 5000m 계주도 충분히 따내지 않을까 싶어요. 잘해서 다같이 메달을 목에 걸고 돌아왔으면 좋겠어요. 국민 여러분들도 계속 응원해주시리라 믿어요. 대회 끝난 뒤로도 꾸준히 쇼트트랙에 관심 가져 주셨으면 좋겠고요.”
인터뷰 시간이 45분쯤 지났을까. 안현수가 자꾸 시계를 보며 눈치를 살폈다. 그는 평소 오후 3시30분부터 러닝머신을 뛴다고 했다. 인터뷰 탓에 15분이 늦어진 것이다.
“일과 중에 정해진 훈련이 있기 때문에지금은 20분 정도 땀을 내야되거든요.”
결국 안현수는 ‘사진을 찍자’는 기자에게 시간을 5분 더 뺏긴 뒤에야 러닝머신에 올랐다. 달리는 내내 안현수는 입을 굳게 다문 채 앞만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