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의 전설' 거룩한 계보 잇기

카타리나 비트, 미셸 콴 現채점상 김연아에 뒤져

올림픽서 金메달 따면 '상품성' 최고조 이를 듯
  • 등록 2009-11-18 오전 8:26:12

    수정 2009-11-18 오전 8:26:12

[조선일보 제공] 김연아(19·고려대)가 세계무대에서 '전설(傳說)의 후예'로 떠오르고 있다. 카타리나 비트(구 동독), 미셸 콴(미국)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피겨 퀸의 새 계보로 자리 잡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전설'의 영예는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이를 위해선 몇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새로운 영역 개척

김연아가 쌓은 업적은 이미 놀랍다. 최근 네 시즌 동안 출전한 모든 대회에서 입상했다. 특히 ISU(국제빙상연맹)가 세계적 엘리트 선수들을 초청해 치르는 그랑프리 시리즈에선 지난 주말 끝난 2009~2010시즌 5차 대회를 포함해 7개 대회 연속 우승을 휩쓸었다. 미셸 콴의 최전성기를 떠올리게 한다.

입상 경력만 화려한 게 아니다. 김연아는 ISU의 신(新) 채점체계에서 독보적인 길을 걷고 있다. 2009 세계선수권(미국 LA)에서 여성 선수로는 처음 200점을 돌파(207.71점)한 데 이어, 지난달 그랑프리 1차 대회에서 다시 역대 최고 기록(210.03점)을 세웠다. 역대 어떤 선수도 현 채점 방식으로 김연아와 견줄 만한 선수는 거의 없다. 김연아에 이어 두 번째로 200점을 넘겼던 아사다 마오(일본)와 '점프의 여왕'으로 불렸던 이리나 슬러츠카야(러시아) 정도다.

■라이벌과의 명승부

구 동독 출신의 카타리나 비트는 피겨가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1980년대의 수퍼스타였다. 세계선수권 4회 우승, 동계올림픽 2연속 우승(1984년·1988년)의 비트는 화려한 외모를 앞세운 감성적인 연기로 보는 이들을 매료시켰다.

1988 캘거리 동계올림픽 프리 스케이팅 작품이었던 '카르멘'은 지금도 유명하다. 비트는 같은 배경 음악을 들고 나온 데비 토마스(미국)와 '카르멘의 전투'라 불린 뜨거운 대결을 펼쳤다.

같은 올림픽의 남자 부문에선 브라이언 보이타노(미국)와 브라이언 오서(캐나다)가 벌인 '브라이언의 전투'가 또 다른 명승부로 화제를 모았다. 당시 2위를 했던 오서는 20여년이 지난 지금 김연아의 코치로 못 이룬 올림픽 금메달의 꿈을 벼르고 있다.

김연아가 세계의 관심을 더 끌려면 아사다 마오, 조애니 로셰트(캐나다) 등 누가 됐건 '1인자'를 위협할 도전자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라이벌이 없는 지금은 오히려 아쉬운 상황이다.

■국제적인 상품성

카타리나 비트는 1988년 프로 전향 후 브라이언 보이타노와 미국을 돌며 아이스 쇼로 대성공을 거뒀다. 1989년엔 '카르멘 온 아이스(Carmen on Ice)'라는 TV 영화에 보이타노와 출연해 에미 상을 타기도 했다.

예술성과 우아함의 절대 기준을 제시했던 미셸 콴은 현역을 떠난 뒤 여러 편의 영화와 TV 드라마에 출연했고, 자서전 등 책을 썼고 피겨 방송 해설자로도 활동했다. 또 대학에서 국제정치를 전공해 미국의 친선외교사절 역할도 해왔다.

김연아도 외모와 연기력 등에선 충분히 상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내년 동계 올림픽 금메달이다. 진정한 전설의 반열에 올라서기 위해선 올림픽이란 상징성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김연아는 카타리나 비트 이후 남녀 싱글 부문에서 올림픽 2연패를 한 선수가 없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세계인들이 "피겨는 몰라도 김연아는 안다"고 말할 날이 올 수도 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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