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칭 '재미추구자'인 가수 조영남(63)씨가 28일 대전 화암동 아주미술관에서 '재미아트―삼팔광땡 조영남 전(展)'을 연다. 1970년에 그린 풍경화부터 1980년대의 사진 콜라주, 1990년대의 화투 그림을 거쳐 올 초에 붓을 놓은 추상화까지 150여 점을 건다. 스물네 번째 전시회다.
그는 서울 청담동에 산다. 시야가 탁 트인 집(595㎡·180평)이다. 한강이 훤히 보이는 거실, 세 벽에 책이 꽉 찬 서재, 이부자리가 흐트러진 침실, 양복과 모자가 정돈된 드레스룸 등 어딜 가나 캔버스가 서 있고 물감 튜브가 굴러다닌다. 막 대입을 치른 딸(19)과 10년 넘게 함께 사는 가사 도우미(78)가 이 집을 나눠 쓰는 식구들이다. 이 밖에 공연기획사·미술경매회사·출판사 직원, 남녀 친구와 후배가 수시로 들락거린다.
그는 "나는 가수 혹은 화가이기 앞서 '재미 추구자'"라고 했다. "그럼 무엇이 궁극의 재미냐. 마음에 드는 여자에게 연애하자고 공들이는 거죠. 다른 모든 재미는 그 재미를 이루기 위한 단계일 뿐이에요."
"친구들이 말렸어요. 이 나이에 자살하면 자살했다고 신문에 나는 게 아니라 '노환(老患)으로 갔다'고 난다고. 1년6개월간 백수로 지내며 밤마다 친구들과 단골 술집에서 웃고 떠들었어요. 원칙이 있는 모임이에요. 식상한 소리, 잘난 척, 일 얘기 세 번 이상 하면 퇴출이에요. 거기 젊은 여자도 많아요. 걔들이 나랑 24시간 놀아주진 않는다는 게 문제죠. 그래서 걔들이 나랑 안 놀아주는 시간에 두 번째로 재미있는 일(그림)을 했어요."
"우리 사회에는 불편하고 엄격한 도덕의 잣대가 있어요. 이혼하면 가슴 아파야 한다는 룰이요. 난 그게 싫었어요. 오만·반역·혁명적 정신의 발로가 아니라, 나를 '정확히' 표현하고 싶어서요. 바람 피웠죠. 새 여자가 더 예뻐 보였거든요. 내가 노름꾼이라 칩시다. 가산? 탕진했지요. 후회? 없어요. 왜? 나는 그때 노름이 정말 재미있었거든요. 잃었지요. 그러나 딸 수도 있었어요."
그는 "후회 안 하는 것이 내 자존심인지 모른다"고 했다. "나 스스로가 얄미운 게 말이죠, 나는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는 인간이에요. 후회를 안 하니까. 내 모든 결정은 그때 내가 내릴 수 있는 최선이었어요." 전시는 내년 2월 8일까지. (042)863~00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