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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앤젤레스=이데일리 SPN 한들 통신원] 김병현이 8일 필라델피아전서 플로리다 이적 후 3연승을 내달리며 자신의 한 시즌 최다승 타이 9승(6패, 평균 자책점 5.47)을 올렸습니다. 9승 중에 2승이 구원승이어서 순도가 떨어지기는 하나 아무튼 1999년 데뷔 후 첫 두 자리 승수를 눈앞에 뒀습니다.
앞으로 남은 등판 횟수는 4차례입니다. 워싱턴, 애틀랜타와 차례로 붙고 마지막으로 뉴욕 메츠와 2경기를 거푸 치릅니다. 그나마 와일드카드의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있는 애틀랜타전을 제외하면 사실상 주목받을 경기는 없습니다.
그러나 시즌을 마치고 자유계약선수가 되는 그에게는 한 경기, 한 경기가 중요합니다. 이삭줍기가 됐든, 구원승이 끼어 있든 두 자리 승수를 채우는 것은 시장에서 나름대로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 지난달 플로리다에서 웨이버로 풀려 애리조나로 갔다가 다시 웨이버가 돼 플로리다로 재이적하면서 이미 시장의 쓰디쓴 평가를 맛본 터, 남은 끝물 등판이 가치를 재평가받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김병현이 두 자리 승수를 거뜬히 채우고, 나아가 희박하지만 3승을 더 보태 '선발 10승'의 대역전 드라마까지 펼치려면 무엇이 가장 필요할까요?
이날 필라델피아전이 그 시사점을 던졌습니다. 바로 패스트볼의 무브먼트입니다. 김병현은 6회까지 2회를 빼고 매회 주자를 내보내면서도 고비마다 삼진을 뽑아 거뜬히 넘길 수 있었습니다. 7탈삼진 중 4개가 올 시즌 빛을 발하고 있는 휘어져 나가는 투심성 패스트볼(3개)과 잠수함 투수의 트레이드 마크인 솟구치는 패스트볼이었습니다. 나머지 3개는 슬라이더(3회 4번 좌타자 라이언 하워드-1개(78마일), 제이슨 워스 -2개)였습니다.
그런데 슬라이더는 익히 알려진 김병현의 전매특허 구질입니다. 필라델피아 타자들도 그것을 잘 알고 있어 1, 2번 좌타자들인 지미 롤린스와 체이스 어틀리의 경우는 타석 맨 앞쪽에 바싹 붙어 김병현의 슬라이더 구사를 원천적으로 봉쇄했습니다. 김병현의 슬라이더 궤적은 워낙 바깥쪽으로 휘어 나가는 게 심해 몸에 맞는 볼로라도 나가겠다는 자세였습니다.
이는 필라델피아 좌타자들이 롤린스나 어틀리 같이 타석 앞에 바싹 붙어 공략했더라면 그만큼 괴롭혔을 가능성이 컸다는 것이고, 타자들이 김병현의 슬라이더에 대처 내지 공략법을 터득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슬라이더를 빼고 다른 변화구(커브나 체인지업, 싱커)들이 그리 뛰어나지 않은 김병현에게 열쇠는 무엇인가요? 패스트볼입니다. 그것도 과거처럼 93마일 대에서 주를 이루는 게 아니라 80마일 중 후반에서 형성되는 패스트볼이기에 무엇보다 볼끝이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합니다.
김병현의 패스트볼이 무브먼트가 살아 있느냐, 아니면 그냥 곧바로 오는 단순한 직구에 불과하느냐 했을 때 그 차이는 이날도 극명했습니다 .
4-0으로 앞선 3회 2사 1, 2루서 3번 우타자 팻 버렐에게 허용한 좌월 3점 홈런이 좋은 예였습니다. 볼카운트 1-2서 버렐이 친 공은 가운데서 몸쪽으로 휘어나가는 투심성이었는데 패스트볼이 아니라, 그냥 직구였습니다. 볼끝의 변화 없이 들어오니깐 된통으로 맞아 좌측 폴 옆에 떨어지는 홈런이 됐습니다. 무브먼트가 있었다면 설혹 잘 맞았더라도 십중팔구 폴 바깥으로 빗겨 나갈 파울이 될 타구였습니다.
반면 무브먼트가 살아 들어왔을 때 김병현의 패스트볼은 톡톡히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3회 1사 1,2루서 어틀리에게 던진 87마일 투심성 패스트볼(루킹), 앞서도 말한 4회 1사 2루서 워스에게 던진 가운데서 솟구치는 패스트볼(헛스윙), 5회 무사 2루서 롤린스에게 던진 87마일 투심성 패스트볼(헛스윙), 6회 선두타자로 나온 하워드에게 던진 89마일 투심성 패스트볼(루킹)은 타자들을 꼼짝없이 얼어붙게 만들거나 방망이를 헛돌렸습니다 .
무브먼트는 결국 피칭 메커니즘이고, 구체적으로 말하면 투구 밸런스의 문제입니다. 이날도 대조적인 타구들이 쌍갈래로 나왔듯 김병현의 피칭 메커니즘은 한 경기 내에서도 왔다갔다 합니다. 이는 투수들이 흔히 하는 말로 '감을 잡는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투수들은 좋았을 때 몸의 기억을 되찾으려 무진 애를 쓰는 감각의 동물이기도 합니다.
김병현이 강타자들인 하워드나 어틀리 등을 삼진으로 잡아냈을 때 짜릿함, 달리 말하면 몸의 기억과 투구 감각을 얼마나 잊지않고 끌고 가느냐. 거기에 데뷔 첫 10승, 아니 역전 드라마의 실마리가 달려 있습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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