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점에서 지난 18일 베일을 벗은 영화 ‘밀수’(감독 류승완)는 확실히 잘 만든 영화다. 대중이 ‘류승완 작품’이라서 갖는 높은 기대치, 그 이상을 구현했기 때문이다.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범죄 활극’ 장르와 투톱 여주인공 서사. 류승완 감독은 언뜻 봐선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소재를 김혜수와 염정아 두 한국 대표 여배우들을 내세워 맛깔나게 버무려냈다. 활어처럼 살아 꿈틀대는 캐릭터들이 바다와 육지를 넘나들며 펼치는 호쾌한 액션 대결과 수 싸움에 빠져있다 보면 129분이 눈 깜짝할 사이 흐른다. 1970년대 향수를 자극하는 추억의 대중가요들까지 흥겹게 장면들을 감싸니 눈과 귀가 즐겁다.
‘밀수’는 1970년대 바다를 낀 가상의 도시 ‘군천’을 배경으로 바다에 던져진 생필품을 건지며 생계를 이어가던 해녀들 앞에 일생일대의 큰 밀수판이 펼쳐지며 벌어지는 해양범죄활극이다. 천만 영화 ‘베테랑’으로 유명한 류승완 감독이 팬데믹 시기 호평을 휩쓴 전작 ‘모가디슈’ 이후 내놓은 신작. 국내를 대표하는 흥행 영화사 외유내강이 제작하고, 김혜수와 염정아, 조인성, 박정민, 김종수, 고민시 등 스크린과 OTT, TV를 종횡무진하는 화려한 배우들의 멀티 캐스팅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다. 여기에 올해 초 일찌감치 개봉일을 7월 26일로 확정, 여름 성수기 개봉하는 한국 영화 ‘빅4’(‘밀수’, ‘더 문’, ‘비공식작전’, ‘콘크리트 유토피아’) 중 첫 타자로 극장가를 공략할 예정이다.
전작 ‘모가디슈’는 실화가 바탕이 된 강력한 사건과 탄탄한 서사, 메시지로 영화적 감동을 선사했다면, ‘밀수’는 등장인물들이 팽팽히 저마다의 매력 및 역량 대결을 펼치는 ‘캐릭터 액션 무비’에 가깝다. 류승완 감독이 액션 연출의 마스터인 만큼, 두 작품 모두 다채로운 스케일의 액션들과 볼 거리가 확실히 보장돼 있다. 다만 ‘밀수’는 ‘모가디슈’ 때 보여준 퍼포먼스와 비교해 그 매력과 강점이 확연히 달라 더 신선하고 매력적이다.
주연은 물론, 조연, 단역까지 극을 채우는 모든 배우들이 구멍 없는 열연을 펼쳤다. 그럼에도 ‘밀수’에서 발견한 가장 큰 보석을 꼽으라면, 김혜수도 염정아도 조인성도 아닌 박정민이라 단언할 수 있다. 박정민은 춘자와 진숙의 뒤치다꺼리만 하던 어리숙한 막내에서 3년 만에 군천 일대 어업장을 접수한 ‘장도리’로 분해 129분 내내 빛나는 활약을 보여준다. ‘밀수’에 등장하는 인물 중 성격 변화가 가장 큰 인물이기도 하다. 특유의 찌질함과 비굴함, 비겁한 성격이 쉴 틈 없는 폭소를 유발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이면에 묻어둔 욕망을 조금씩 키워가며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는 입체적 캐릭터다. ‘밀수’가 범죄 ‘오락’ 영화가 될 수 있게 완성시킨 일등공신이다. 군천의 정보통인 뉴-종로 다방의 마담 ‘고옥분’으로 변신한 고민시의 어시도 빼놓을 수 없다. 현장은 물론, 극 안에서도 정보통으로 언니들의 예쁨을 독차지할 수밖에 없는 눈치 빠른 ‘황금 막내’로 톡톡한 역할을 해낸다. 박정민과 함께 ‘밀수’에서 웃음 지분이 압도적이다. 소모되는 기능적 역할로 그칠 수 있는 캐릭터임에도 묵직한 존재감으로 긴장감을 유발한 세관 계장 이장춘 역의 김종수, ‘권상사’ 역을 맡아 거의 원맨쇼에 가깝게 육지에서의 액션과 비주얼을 책임진 조인성도 오롯이 제 몫을 해냈다.
그야말로 10대부터 70대까지 전 세대가 즐길 수 있는, 여름에 가장 잘 어울리는 오락 영화다. 류승완 감독의 선곡, 음악감독 장기하의 디렉팅을 거쳐 장면 장면을 채운 70년대 BGM이 이 영화의 100%를 완성시키는 마지막 퍼즐조각.
7월 26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