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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영화 ‘미나리’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윤여정,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으로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을 받은 오영수 등 드라마와 스크린을 휘어잡던 노배우들이 올해는 여배우들을 주축으로 고정 예능까지 접수하면서다. 사실 중장년 이상 시니어들을 내세운 콘텐츠가 부상하기 시작한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2013년 방송된 tvN 예능 ‘꽃보다 할배’를 시작으로 배우 윤여정이 출연한 ‘윤식당’, ‘윤스테이’ 등 시니어를 중심으로 끌어올린 방송가의 시도들은 여러 차례 이어져 왔다. 그 결과 하나의 ‘매력적 장르’로 자리잡은 ‘시니어 콘텐츠’가 지난해 노배우들이 본업에서 일군 여러 도전 및 성과들과 시너지를 내며 올 상반기 ‘중심 트렌드’로 우뚝 섰다. 기존의 시니어 콘텐츠가 주로 ‘관찰 예능’의 형태로 노년의 품격과 연륜을 간접적으로 조명했다면, 올해는 한 발 짝 더 나아가 시니어들이 직접 새로운 도전에 뛰어들어 아랫세대와 화합하거나 경험치를 바탕으로 청년들과 직접 고민을 나누고 조언을 건네는 ‘소통’의 포맷을 표방한다는 점이 눈에 띄는 변화다.
시청자 울린 두 80대 노배우의 합창 도전
지난달 14일 방송을 시작한 JTBC 예능 ‘뜨거운 씽어즈’는 81세, 85세 배우 나문희와 김영옥을 주축으로 시니어 스타들이 함께 합창단을 꾸리는 과정을 그려 주목받고 있다. 김광규, 장현성, 이종혁, 최대철, 이병준, 우현, 이서환, 윤유선, 우미화, 권인하, 서이숙, 박준면, 전현무 등이 나문희, 김영옥과 함께 ‘시니어벤져스’ 합창단원으로 출연 중이다. 김문정 음악감독과 밴드 잔나비의 보컬 최정훈이 이들을 가르치는 멘토로 나선다. 특히 연출의 신영광 PD는 제작발표회에서 이 프로그램이 처음부터 김영옥을 뮤즈로 내세워 기획된 것이라 밝혀 눈길을 끌었다. 신 PD는 “배우 김영옥이 아닌 인간 김영옥도 너무 좋아 ‘노래’로써 그 인생을 녹여보고 싶었다”고 이유를 덧붙였다. 출연진 도합 나이 990세. 그러나 시니어 합창단원의 뜨거운 열정과 도전정신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오늘이 남은 날 중 제일 젊은 날’이란 프로그램 슬로건처럼 말이다. 프로그램 주축을 맡은 나문희, 김영옥 두 노배우의 출연 동기도 화제다. “노래는 가수가, 배우는 연기자가”라 생각해온 자신의 편견을 깨는 도전이라 밝힌 김영옥과 “우리 세상이 있다는 걸 알았으면 한다”는 나문희의 메시지는 후배 참가자들의 목표 및 호연지기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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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시즌1을 시작으로 현재 시즌3 방송 중인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가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도 ‘소통’과 ‘공감’에 있다. 박원숙, 혜은이, 김영란, 김청 등 한 시대를 풍미한 여배우들이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 일상과 인생의 고민들은 비슷한 나이대 중장년 여성들에게 동질감을 선사한다. 또 후배들이 찾아와 털어놓는 고민에 귀 기울이며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네는 이들의 따뜻한 모습은 젊은 시청자들에게 ‘대리 위로’를 제공한다. 지난해 6월 방송 당시 29세 간호사의 고민을 상담해주던 박원숙이 “한때 나를 인생 실패자라 생각한 적이 있었다”고 비슷한 나이대 자신의 실패 경험들을 고백하며 “지금 돌아보니 아니더라. 지금은 살아있음에 감사한다”고 위로한 장면은 방송 이후 많은 화제를 낳기도 했다.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 역시 올해 등장한 시니어 콘텐츠들의 차별점이 ‘화합’과 ‘소통’이라고 꼽았다. 김 평론가는 “기존 콘텐츠가 노년의 삶 자체를 보여주는 것에 그쳤다면, 오늘날의 콘텐츠들은 젊은 세대조차 적응하기 벅찬 빠르고 혼란스러운 현대 사회에 노년의 배우들이 대처하고 적응하는 방식을 보여준다”며 “격세지감에 압도되지 않고 후배들과 활력 있게 인생의 도전을 지속하는 모습은 청년들에게 위로와 가르침을 준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함께 인생의 고민을 나누고 조언하는 모습을 통해 세대의 장벽을 허무는 ‘가교’로서 화합을 이끌어내고 있다고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