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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프로골프(PGA) 투어 혼다클래식에서 데뷔 50번째 대회 만에 첫 우승의 꿈을 이룬 임성재(22)가 4일(한국시간) 긴박했던 순간들을 털어놨다. 첫 우승으로 가는 길이었던 베어 트랩과 18번홀을 어떻게 플레이했는지 평생 잊을 수 없는 특별한 순간을 이데일리 독자들을 위해 재구성했다.
PGA 투어 우승. 골프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7살 때부터 가슴 속에 품은 목표다.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았던 PGA 투어 우승이 가까워졌다는 걸 11번홀 버디 퍼트를 집어넣은 뒤 느꼈다. 그러나 우승을 생각해서일까. 12번홀과 13번홀에서 연속 보기를 범했다. 선두 자리도 내줬다.
베어 트랩의 첫 번째 홀인 15번홀 티잉 그라운드에 올라왔을 때 선두와의 격차는 1타 차. 우승을 위해서는 버디가 필요했다. 이번 대회 캐디를 해준 앨빈 최(28) 형과 상의 끝에 핀을 직접 보고 치기로 했다.
티잉 그라운드에서 홀까지는 180야드. 홀의 위치가 오른쪽 해저드 바로 옆인 만큼 5번 아이언으로 페이드를 구사하기로 마음먹었다. 똑바로 날아가다가 오른쪽으로 휘어지는 페이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질인 만큼 자신 있었다. 공이 오른쪽으로 조금이라도 밀리면 해저드에 빠질 수 있는 만큼 나도 모르게 몸을 비꼬았지만 결과는 완벽했다. 손을 떠난 공은 핀 왼쪽으로 출발해 살짝 페이드가 걸리며 홀 옆 2.4m 거리에 멈췄다.
그린에 올라가서는 홀 주변과 공이 지나가는 길의 경사를 살폈다. 라이가 선명하게 보였다. 홀 오른쪽 안쪽을 보고 자신 있게 쳤다. 공은 상상한 대로 굴러간 뒤 홀로 사라졌다. 우승할 수 있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됐다.
5번 아이언 클럽 헤드 페이스를 열고 강하게 친 공은 벙커 턱을 넘어 그린을 향해 날아갔다. 해저드에 빠질 각오로 두 번째 샷을 했는데 그린에 공이 올라가 너무 행복했다. 그린에 가서는 마음을 다시 다잡고 집중해 파를 잡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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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 아이언으로 친 공은 살짝 페이드가 걸려 홀 옆 약 2.4m 거리에 멈췄다. 1타 차 단독 선두였던 만큼 차분하게 버디 퍼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때 같은 조에서 우승 경쟁을 벌인 휴즈가 약 16m 버디 퍼트를 집어넣으며 나를 압박했다.
평정심을 잃지 않기 위해 앨빈 형과 더 집중했다. 15번홀처럼 17번홀에서도 그린의 경사가 눈에 띄게 잘 보였다. 홀 왼쪽 안쪽을 보고 친 공이 홀로 들어갔을 때 나도 모르게 기쁨의 어퍼컷을 날렸다.
1타 차 단독 선두로 18번홀을 시작했기 때문에 크게 떨리지 않았다. 티샷은 페어웨이 왼쪽으로 벗어났지만 두 번째 샷으로 페어웨이에 공을 올려놨다. 세 번째 샷이 88야드밖에 남지 않았던 만큼 핀을 직접 보고 스윙을 했는데 뒤땅이라는 상상도 못한 샷이 나왔다. 처음에는 너무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실수를 자책할 시간은 없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파를 잡겠다는 생각으로 네 번째 샷을 준비했다. 공이 놓인 라이가 좋았던 만큼 벙커샷은 어렵지 않았다. 네 번째 샷은 홀 옆 0.5m 거리에 붙었고 파 퍼트는 홀 정중앙을 보고 자신 있게 쳤다.
먼저 경기를 마친 뒤 스코어카드를 제출할 때 챔피언조에서 경기하던 플릿우드가 17번홀 버디로 1타 차로 추격하는 걸 봤다. 플릿우드가 마지막 18번홀에서 티샷을 페어웨이로 보낸 만큼 연장을 대비하며 클럽 하우스에서 경기를 지켜봤다.
우승을 차지한 기분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하늘을 날아갈 것 같다’다. 나흘 내내 모든 걸 쏟아 붓고 대회가 끝난 뒤에도 우승 인터뷰와 기념 촬영 등 많은 일정을 소화했지만 웃음만 나왔다. 사실 월드골프챔피언십(WGC) 멕시코 챔피언십 때 식중독에 걸려 혼다 클래식이 걱정될 정도로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다행히 연습라운드를 앞두고 몸 상태가 완전히 회복됐고 PGA 투어 첫 우승이라는 결실을 맺게 됐다.
가족들과 생애 최고의 저녁 식사를 한 뒤 숙소로 돌아왔다. 침대에 누워 휴대전화를 봤을 때 축하 연락이 수백 개가 와 있어 깜짝 놀랐다. 동료부터 팬들까지 자기 일처럼 기뻐해 줘서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번 우승이 끝이 아닌 시작인 만큼 초심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다음 목표는 2020년 도쿄 올림픽이다. 올해 열리는 도쿄 올림픽에서 좋은 플레이를 펼쳐 전 세계를 놀라게 하고 싶다. 우선 5일 개막하는 아놀드 파머 인비테이셔널에 집중할 계획이다. 지난해 공동 3위를 차지한 좋은 기억이 있는 아놀드 파머 인비테이셔널에서 2년 연속이자 2주 연속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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