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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려 있는 결말, 반전과 복선이랄 것도 없다. 하지만 ‘미생’을 마주하고 있는 순간만큼 심장이 뛸 때도 없다. 장그래가 곧 나의 모습인 현실 공감력이 높다. 우직하고 올곧고 일 잘하는 직장인인 오과장과 같은 상사를 원하는 판타지가 따라온다. 짠한 일상과 함께 그 이면에 담긴 직장인들의 꿈까지 담은 ‘미생’은 ‘다큐 3일’만큼 현실적이면서 ‘별에서 온 그대’만큼 설렘을 안기는 작품이다. ‘미생’의 장그래와 오과장(이성민 분)에 이입된 요즘 직장인의 마음을 엿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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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그래는 ‘스물여섯이나 돼서 할 줄 아는 게 거의 없는 요즘 청년 같지 않은’ 사람이다. 검정고시 출신으로 무역회사 인턴으로 입사할 기회를 안은 장그래는 백화점에서 번듯한 양복 한 벌 살 수 없는 집안의 장남이지만 남들 눈엔 ‘빽 든든한 낙하산’이다. 밥을 먹을 때도, 커피를 마실 때도, 복사할 때도 외로운 무능력자이지만 살아남기 위한 프레젠테이션(PT)을 앞두곤 동료의 러브콜을 받는 ‘웃픈(웃기고 슬픈) 존재’다. 그에게도 장점은 있다. ‘한 번도 노력하지 않았으니 내 노력은 신삥’이라는 근거 있는 자신감, 비록 ‘포기된 꿈’으로 남았지만 한 가지에 미쳐본 적이 있는 ‘바둑의 삶이’이 있다.
우린 모두 저마다 장그래다. 어떤 사람은 ‘그럼에도 장그래는 인턴의 특전이 주어졌다’는 불공평함을 얘기하지만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미운 오리 새끼의 고군분투에 동정표를 던지지 않는 이들은 없다. 첫 입사, 첫 출근, 모든 것이 낯선 업무 공간에서 상사의 눈에 들기 위해, 동료보다 나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우린 많은 혼잣말을 되뇌곤 한다. “넌 뭘 그리 멀뚱멀뚱 앉아 있냐?”라는 타박은 실체가 아니다. 저마다 장그래인 우리들의 머릿속엔 ‘지금 뭘 해야 좋을까’, ‘점심은 무슨 메뉴를 골라야 구박을 안 당할까’, ‘지금 질문을 해도, 결제 서류를 올려도 될까’, ‘이걸 진행한다면 뭐라고 할까’ 등등의 수많은 물음이 답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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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그래는 정규직 전환에 실패하는 캐릭터다. “만약 드라마에서는 정규직 전환이 되는 극적인 설정이 연출된다면 그건 ‘미생’이 아니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 드라마는 현실적인 이야기만 하고 있다. 그 현실 속에서 오상식 과장은 묘한 판타지를 안기는 인물이다. ‘미생’의 진짜 중심은 ‘오과장’이라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어제의 장그래’와 ‘오늘의 장그래’가 ‘내일의 장그래’로 성장하게 만드는 인물이다. 그가 장그래를 밀고 끄는 과정을 지켜보며 시청자는 ‘나에게도 나만의 오과장이 필요하다’는 욕구를 갖게 된다. 앞날이 보장돼 있지 않은 계약직 사원을 지원사격해주는 유기적인 노력은 현실에선 찾기 힘들다. 보여지는 결과에 치중한 ‘될 놈만 민다’라는 현실론자들 앞에서 오과장은 많은 직장인의 부러움을 자극하는 캐릭터다.
‘미생’ 제작 관계자는 “자리가 사람을 말한다고 직장에서도 직급이 올라갈수록 아래를 돌보는 시선이 좁아질 수 있다. 오상식 과장이란 인물은 자기를 보지 않고 위와 아래를 본다. 현실에 있기 힘든 캐릭터이지만 누구보다 현실에서 필요로 하는 인물이라고 한다. 많은 남자 시청자가 오상식 과장을 보며 ‘내게 만약 저런 상사가 있다면 정말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라도 모든 걸 재치고 믿고 갈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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