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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L 선두를 달리는 맨체스터 시티의 사령탑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 몇 주 전 기자회견에서 황희찬을 ‘코리안 가이’라고 부른 것이 계기가 됐다. 황희찬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 과르디올라 감독이 그렇게 부른 것이 새로운 별명으로 자리매김했다. 지금은 과르디올라 감독도 황희찬의 이름을 모를 리 없다. 올 시즌 EPL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공격수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황희찬은 오스트리아 리그(잘츠부르크), 독일 분데스리가(라이프치히)를 거쳐 2021년 EPL 울버햄프턴에 입단했다. 지난 두 시즌은 살짝 아쉬웠다. 붙박이 주전이라고 하기에는 2% 부족했다. 잦은 부상이 발목을 잡기도 했다.
이번 시즌 황희찬은 한층 업그레이드됐다. 24일 현재 10경기에서 6골 1도움을 기록 중이다. EPL만 놓고 보면 9경기에 나와 5골 1도움을 수확했다. 리그 득점 순위 공동 6위에 자리해있다. 1골만 추가하면 EPL 입성 첫 시즌인 2021~22시즌에 세운 5골을 넘어 리그 개인 최다골 기록을 수립한다.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골 결정력이다. 황희찬은 EPL 기준으로 이번 시즌 15차례 슈팅을 때려 5골을 터뜨렸다. 슛 성공률이 33.3%다. 올 시즌 5골 이상 기록 중인 선수 가운데 1위다. 5번의 유효슈팅이 모두 골로 연결됐다.
울버햄프턴에서 활약했던 지난 두 시즌 슈팅 대비 골 성공률이 0.19(2021~22시즌), 0.17(2022~23시즌)보다 월등히 높다. 그전에는 공격수로서 다소 투박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하지만 올 시즌은 언제 어디서나 골을 터뜨릴 수 있는 날카로움이 빛나고 있다.
황희찬의 득점 장면을 보면 대단한 개인기나 슈팅으로 골을 넣는 것이 아니다. 열심히 공간을 파고든 뒤 동료의 패스를 받아 깔끔하게 골로 마무리한다. 공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필요한 순간과 위치에 늘 황희찬이 있다.
오닐 감독도 황희찬의 위치선정 능력에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그는 “황희찬은 100만번 시도해 한 번 성공할까 말까 한 중거리슛을 시도하는 것이 아니다”며 “그는 위치를 잘 잡을 줄 알고 마무리가 매우 안정적이면서 위협적이다”고 말했다.
EPL에서 세 번째 시즌을 보내면서 여유가 쌓인 것도 황희찬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그전까지 황희찬은 EPL의 거친 플레이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번 시즌에는 오히려 이를 역이용하고 있다. 상대 몸싸움에 맞서면서 반칙을 유도하고 경고, 퇴장을 이끌어낸다.
황희찬이 끌어낸 수적 우위는 팀 승리의 결정적인 도움이 됐다. 황희찬은 후반 43분 상대 수비수 사이를 뚫고 돌파한 뒤 절묘한 침투패스로 결승골을 어시스트했다.
지난 8라운드 아스톤빌라전에선 상대 수비수 팔에 얼굴을 맞아 코피를 흘리기도 했다. 7분 뒤 지혈을 위해 솜으로 코를 막은 상황에서 선제골을 터뜨리는 투혼을 발휘했다.
황희찬은 최근 대표팀에서도 물오른 경기력을 뽐내고 있다. 지난 17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베트남과 경기에선 환상적인 왼발 슈팅으로 팀의 두 번째 골을 책임졌다.
당시 골을 넣은 뒤 이마에 손을 얹어 멀리 보는 듯한 세리머니를 펼쳤던 황희찬은 “이 순간을 즐기고 더 높은 곳을 바라보며 나아가자는 의미”라며 “EPL에서도 더 많은 골을 넣어 이 세리머니를 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황희찬은 경험을 통해 겸손함과 평정심을 유지해야 좋은 경기를 할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달았다. 그는 “기록에 욕심을 내면 경기력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팀에 도움되는 역할을 계속하다 보면 기록은 따라올 것이다. 계속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 드리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