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성수기를 앞둔 극장에서 이러한 변화가 특히 많이 포착된다. ‘범죄도시3’(감독 이상용), ‘귀공자’(감독 박훈정). 6월 극장가를 접수한 두 한국 영화 기대작의 공통점은 꽃미남 스타가 악역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준혁과 김선호가 악당의 얼굴로 필모그래피 사상 가장 파격적인 연기 변신을 감행했다.
이준혁, 20kg 벌크업→보이스 트레이닝까지
‘범죄도시3’ 이준혁이 지난달 31일 먼저 시험대에 올랐다. ‘범죄도시3’는 괴물형사 마석도(마동석 분)가 서울 광역수사대로 이동한 후 신종 마약범죄 사건의 배후인 주성철(이준혁 분)과 또 다른 빌런 리키(아오키 무네타카 분)를 잡기 위해 펼치는 통쾌한 범죄 소탕 작전을 그린 액션 영화다. ‘범죄도시’ 시리즈는 주인공인 ‘마석도’ 만큼이나 그에 맞설 빌런들의 역할 비중이 유독 큰 작품이다. 1편 빌런으로 활약한 윤계상, 2편의 빌런이었던 손석구의 존재는 ‘범죄도시’를 성공한 프랜차이즈로 끌어올린 일등공신이었다. ‘범죄도시’ 시리즈가 배우로서 두 사람의 인생을 바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이준혁은 두 사람의 계보를 잇는 3세대 빌런 ‘주성철’로 외적, 내적으로 파격 변신을 꾀했다. 영화 ‘신과 함께’ 시리즈의 박 중위, 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의 오영석, 드라마 ‘비밀의 숲’ 시리즈의 서동재, ‘적도의 남자’ 이장일 등 이준혁의 필모그래피에도 악역은 있었다. 하지만 완전히 ‘악당’이라고 표현하기 애매한 아픔의 서사를 지닌 입체적 역할들이 대부분이었다. ‘범죄도시3’ 주성철은 그들과 정반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만만하고 악독한 캐릭터다. 이준혁은 우락부락한 마석도 앞에서도 눈 하나 깜짝않는 ‘주성철’을 표현해내기 위해 본인의 외모부터 바꿨다. 운동과 식단으로 3개월 만에 20kg을 벌크업했고, 평소의 꽃미남 얼굴이 떠오르지 않게 피부까지 구릿빛으로 태웠다. 제멋대로 삐죽삐죽 자란 머리칼, 품이 넓은 정장 패션으로 ‘이준혁’의 흔적을 철저히 지웠다. 여기에 거친 주성철의 면모를 목소리와 말투에도 녹이고자 개인 보이스 트레이닝까지 받았다는 후문이다. 이준혁은 “연기자로서 직업적 고민이 유독 많았을 때 마동석 선배로부터 고마운 제안을 받았다”며 “주성철은 태어나 한 번도 실패를 겪어본 적 없는 인물이다. 머리가 좋고 폭력적인 자신만만한 악당을 맡는 건 처음이라 큰 도전이었다”고 털어놨다.
김선호는 그간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스타트업’ 등 로맨스 코미디 장르로 국내는 물론 해외의 여심까지 녹이며 안방극장 스타로 활약해왔다. 그런 그가 오는 21일 개봉을 앞둔 스크린 데뷔작 ‘귀공자’에서 새로운 얼굴을 선보인다. ‘귀공자’는 영화 ‘신세계’, ‘낙원의 밤’, ‘마녀’ 시리즈 등으로 누아르 액션 마스터로 자리매김한 박훈정 감독의 야심찬 신작이다. 필리핀 불법 경기장을 전전하는 복싱 선수 마르코(강태주 분) 앞에 정체불명의 남자 귀공자(김선호 분)를 비롯해 각기 다른 목적을 지닌 세력들이 나타나 광기의 추격을 펼치는 이야기다.
그간 주로 로맨스 장르 드라마에서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던 김선호에게 ‘귀공자’는 커다란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추격 액션 장르 도전 자체가 처음인데 그 안에서도 데뷔 최초 ‘귀공자’란 악역에 도전하기 때문이다. 김선호가 맡은 ‘귀공자’는 해맑은 눈빛과 미소로 지독하게 마르코를 추격해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파괴적인 캐릭터다.
박훈정 감독은 김선호를 캐스팅한 이유에 대해 “캐릭터가 냉정하고 잔인한 면이 있지만, 엉뚱하면서 본인만의 유머도 지닌 여러모로 매력적인 캐릭터”라며 “김선호가 지닌 얼굴에서 귀공자 캐릭터에 맞는 얼굴들을 찾았다”고 전했다. 김선호 역시 “배우로서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고 해내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역할에 애착을 드러냈다.
얼마 전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된 영화 ‘화란’ 역시 조직의 중간 보스 역할로 거친 모습을 처음 선보인 한류스타 송중기의 연기 변신이 화제를 모았다. 원조 한류스타 송승헌도 지난달 공개돼 공개 첫 주 비영어권 시청 시간 1위를 기록한 넷플릭스 시리즈 ‘택배기사’에서 강렬한 악역에 도전해 눈길을 끌었다.
업계에선 미남들의 잇단 연기 변신이 단순한 우연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관객들은 물론, 배우와 감독들도 새로운 이야기와 캐릭터를 추구해 차별성을 꾀하려다 보니 악역들도 캐릭터성이 다양해지고 있다”며 “콘텐츠의 흥행에 주인공 못지 않게 악역 비중이 높아졌고, 의외의 캐스팅을 통해 콘텐츠의 신선함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난 변화”라고 설명했다. A 중견 제작사 대표는 “국내, 해외 팬덤을 갖춘 꽃미남 스타들을 새로운 캐릭터로 캐스팅하는 것은 콘텐츠 판매 면에서도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며 “팬들 입장에선 좋아하는 스타의 연기 변신을 볼 수 있고, 관객 입장에서도 악당이 잘생기면 더 눈길이 가지 않나. 여러 니즈(수요)들이 맞아 떨어진 현상”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범죄도시3’ 이상용 감독은 빌런들의 캐스팅 1순위를 ‘외모’로 꼽아 눈길을 끌었다. 이상용 감독은 “영화를 볼 때 배우 자체의 매력을 무시할 수 없는 만큼, 어떻게 이 배우를 망가뜨려 날 것의 모습을 뽑아낼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