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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신인 배우 A씨는 갑작스런 문자에 깜짝 놀랐다. 상대방은 며칠 전 드라마 오디션으로 처음 만난 지상파 방송국 PD B씨였다. B씨는 오디션 내내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A씨는 이번에도 떨어졌다고 낙심했다. 그러던 중 B씨의 연락은 동아줄처럼 느껴졌다. 마음이 바뀌기 전에 답장을 해야겠다 생각했다. 그때 B씨가 보낸 주소가 눈에 들어왔다. 방송국 근처 오피스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매니저에게 먼저 전화했다. 매니저는 외쳤다. “절대 혼자 가면 안돼.”
국내에서 미투(#METOO) 운동이 전개되면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분야 중 하나는 연예계다. 현재 전 세계적 미투 운동의 시발점이 된 게 지난해 할리우드 거물 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추문 사건이었다. 기네스 팰트로·안젤리나 졸리·애슐리 주드·로즈 맥고완·셀마 헤이엑 등 수십명의 여배우들이 과거 그에게 당한 성추행을 털어놨다. 우마 서먼도 3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웨인스타인에게 성적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한국 연예계도 여성 구성원들의 성추행에 대한 노출 위험은 할리우드와 크게 다르지 않다다. 또 피해자, 가해자들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될 만한 면면이라는 점도 흡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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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시작된 연예계 피해자들의 적극적인 움직임에도 이는 극히 일부라는 지적도 있다. 상대적 약자인 여성 배우나 여성 스태프 등이 당한 성추행의 피해가 적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연예계란 배경이 지닌 특수성도 이유 중 하나다. 연예계는 작품에 따라 출연자와 스태프가 뭉치고 흩어진다. 감독이나 PD, 그것도 이름이 알려진 스타 감독 혹은 스타 PD의 권력은 상당하다. 이들의 눈 밖에 나거나 불미스러운 소문이 있으면 피해자임에도 불이익을 당한다는 우려가 만연해 있다.
성추행 등 문제가 발생했을 때 상대방을 고소하거나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방법도 있다. 자신이 성추행으로 피해를 입었음을 증거를 통해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장수혁 가현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자신이 성추행을 당했음을 입증하는 직접적인 증거 확보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에 사후 가해자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문자 메시지나 통화 기록, 혹은 현장을 목격한 증인 확보 등이 중요하다”면서 “나아가 성범죄 예방을 위한 성희롱 처벌 규정을 신설하고 기존 성추행 등 범죄에 대한 양형을 높이는 논의 등 근본적인 대책 마련도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