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 '굿프' 장동건도 함께 해 행복했던 '라디오 대통령'

  • 등록 2009-11-14 오전 9:32:52

    수정 2009-11-14 오전 9:32:52

▲ 이상훈


[이데일리 SPN 김은구기자] “장동건씨가 절 만나서 행복했을 거예요.”

2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에서 대통령 차지욱 역을 맡은 장동건의 외교안보수석으로 출연한 배우 이상훈(39)의 주장(?)이다.

‘굿모닝 프레지던트’ 촬영 당시 틈이 나면 박정희, 김영삼, 노무현 등 역대 대통령들의 성대모사를 해줬는데 장동건이 너무 재미있어 했다는 것이다.

실제 이상훈의 성대모사는 목소리만 들으면 대통령 본인들이 말하는 것으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흡사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조국의 경제발전을 위해…”부터 노무현 대통령의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아~기분 조타”, “일을 쎄빠지게 할 때는 모르더니만…”까지.

그도 그럴 것이 이상훈은 MBC 표준FM에서 한국 근·현대 정치사를 다루며 21년 동안 방송되다 지난 10월17일 종영된 라디오 다큐드라마 ‘격동 50년’에서 박정희, 김영삼, 노무현 대통령의 목소리 연기를 맡은 성우이기도 하다.

‘격동 50년’에 참여했던 많은 성우들이 한번 맡기 힘들었던 대통령 역을 이상훈은 3명이나 연기했다. ‘굿모닝 프레지던트’를 촬영하며 톱스타 장동건에게 “대통령을 3번 했던 아우라가 당신을 보좌하고 있다”고 농담을 던질 수 있었던 것도 그래서다.

 
▲ 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에 함께 출연한 장동건과 이상훈


하지만 그 목소리 연기가 쉽지 않았다고 했다.

“매번 맡는 대통령의 습관적인 멘트를 공부하고 억양과 말투까지 고쳐야 했으니까요. 게다가 선배들이 해주는 이런 저런 조언들까지 신경 쓰다 보면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나중에는 PD가 절 배려해서 ‘이상훈한테 아무 조언도 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기도 했었죠.”

◇ 부산서 시작된 '라디오 대통령'의 꿈

성우 출신 연기자들도 몇몇 있다. 그러나 이상훈의 경우는 좀 다르다. 이상훈은 1989년 연극무대를 통해 연기를 시작했고 성우가 되기에 앞서 영화 출연도 했다. 그리고 1999년 공채를 통해 MBC 성우 시험에 합격했다. 연기자 출신 성우, 연기자 겸 성우다.

“사실 어려서 성우가 꿈이었어요. TV에서 외화 시리즈 ‘600만불의 사나이’, ‘에어울프’, ‘전격 Z작전’ 등을 너무 좋아했거든요. 부산에서 살았기 때문에 환상이 더 컸던 것 같아요.”

TV 외화 시리즈가 방영될 때면 카세트 녹음버튼을 눌러놓고 녹음을 한 뒤 밤새 듣고, 그것도 모자라 대본을 손으로 적어 누나들과 연습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중학생 시절 방학 기간에 혼자 서울로 올라와 성우들을 직접 만났다.

이상훈은 “성우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어봤더니 ‘사투리부터 고쳐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이 어렸던 제게는 ‘넌 안된다’처럼 들렸어요”라고 말했다.

그 후 가족과 함께 서울로 이사를 와서 생활하다 전단지를 보고 극단에 찾아가 단원이 되면서 연기를 시작했다.

최불암이 대표로 있던 현대예술극장에서 공연된 ‘춘향전’에 출연하면서 이상훈은 연기자로서 확고한 마인드를 갖게 됐다.

역할은 암행어사 출두를 할 때 등장하는 포졸 중 한명이었다. 어찌 보면 보잘 것 없는 역할이었다.

“주인공 뒤에 늘어서 있는 병풍 같았어요. 사람 개개인이 살아온 인생이 다를 텐데 포졸이라고 분장을 아무 특색 없이 다 똑같게 해주더라고요. 그래서 최불암 선생님에게 ‘우리가 병풍이냐’고 물었죠. 그렇다고 하면 정말 그만 둘 생각이었어요.”

 
▲ 이상훈


그러나 당시 최불암은 이상훈에게 “작은 역할은 있어도 작은 배우는 없다”는 말을 해줬다. 이후 이상훈은 스스로 개성 있는 분장을 하기 위해 특수분장까지 가르쳐주는 전문 아카데미를 찾아가 공부를 했다. 자신은 작은 배우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노력의 하나였다. 덕분에 영화 ‘기막힌 사내들’에 출연자 명단과 함께 분장 스태프, ‘간첩 리철진’에서도 분장 스태프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성우 시험에 응시한 것은 대학(서울예대 연극과)에 입학한 이후였다. 당시 교내 방송반 연기부에서 활동을 했는데 성우로 진출한 선배들이 찾아와 지도를 해주는 모습에 과거 잊었던 꿈이 떠올랐다.

하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아카데미를 다니며 성우의 일을 전문적으로 배워본 적도 없었지만 ‘복장불량’이라는 이상한 이유 때문에 떨어지기도 했다.

“그래도 깨끗한 티셔츠와 운동화를 신고 갔는데 남들은 정장을 입고 오더라고요. 그래서 겉옷 상의는 하나 더 입었는데 최종 시험을 볼 때 운동화를 지적받았죠. 현장에서 다른 사람의 구두만 빌려 신고 들어갔더니 합격했어요.”

원래 실력은 어느 정도 갖췄다는 말도 된다. 그러고 나서 시작된 라디오와의 인연. 하지만 요즘은 ‘격동 50년’이 최근 종영한 것을 비롯해 여러 성우가 출연하는 라디오 드라마가 사라지면서 성우의 역할도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이상훈은 “과거에는 만화를 각색한 ‘배철수의 만화열전’ 등 라디오 드라마들이 많았고 팬층도 두꺼웠는데 사라지고 있는 현실이 아쉬워요. 특히 ‘격동 50년’을 즐겨 들었던 버스기사, 택시기사들에게는 요즘 ‘죄송하다’고 사과까지 하고 다녀요”라고 말했다.

 
▲ 첫 주연급 배역인 박 교도관 역을 맡은 영화 '아들'에서 차승원과 촬영 중인 이상훈.


◇ 장진 감독과 인연, 작은 역할 크게 만든 드라마

이상훈은 장진 감독이 제작, 감독을 맡은 영화 다수에 출연했다. ‘기막힌 사내들’과 ‘거룩한 계보’, ‘바르게 살자’, ‘굿모닝 프레지던트’. 역시 장진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던 영화 ‘아들’에서는 주연급인 박 교도관 역으로 등장했다.

장진 감독과의 인연은 1993년부터 시작됐다. 군 제대를 하고 복학한 장진 감독과 함께 대학생활을 했다. 졸업동기다.

장진 감독이 서울 대학로에서 첫 연출한 연극의 조연출이 이상훈이었고 장진 감독의 단편영화 데뷔작 조연출도 이상훈이었다.

그렇다고 이상훈이 장진 감독의 영화에만 출연한 것은 아니다. ‘황산벌’, ‘그 남자의 책 198쪽’, ‘아부지’, ‘불꽃처럼 나비처럼’, ‘김씨 표류기’, ‘바보’ 등에 출연했다.

특히 드라마에서의 활약이 발군이었다. ‘연개소문’, ‘시티홀’, ‘바람의 화원’, ‘찬란한 유산’ 등에 출연했는데 모두 당초 예정보다 더 많이 등장을 했다. 방송과 촬영이 함께 진행되는 드라마 제작환경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의 비중을 늘리는 것은 흔히 있는 일. 이상훈은 매 출연작마다 그런 성과를 이뤄냈다.

고구려 북쪽지방 최고 권력자 협부 역을 맡았던 ‘연개소문’에서는 다양한 연령대의 목소리를 소화할 수 있어 첫회부터 연개소문의 아역시절, 젊은 시절을 거쳐 중장년 시절로 다시 돌아오기까지 최후를 맞기 전인 73회까지 모두 출연했다. 100회까지 방송된 ‘연개소문’에서 전 시대에 모두 등장한 것은 이상훈을 포함해 3명뿐이었다. 나중에 ‘연개소문’의 극본을 맡은 이환경 작가를 만났다가 ‘목소리가 참 좋다’는 칭찬도 받았다.

 
▲ 드라마 '바람의 화원'에서 문근영과 함께 한 이상훈

‘바람의 화원’에서는 저잣거리에서 돈을 받고 책을 읽어주는 강독사 공씨 역으로 캐스팅됐다가 자꾸 등장하면서 김홍도(박신양 분)의 그림 모사본을 팔아먹다가 걸려 나중에는 김홍도의 스파이 역할까지 하는 인물로 변신했다. 신윤복 역을 맡은 문근영이 “공씨 아저씨는 역할이 몇개냐”며 혀를 내둘렀을 정도다.

‘시티홀’에서는 2회 출연이 예정된 마을청년회장 역을 맡아 촬영을 시작했는데 극중 아내(정수영 분)까지 생기면서 절반 넘게 출연을 했다. ‘찬란한 유산’에서는 공장장 역으로 1회 출연 예정이었지만 5~6회 등장하며 주주총회에서 활약까지 했다. ‘작은 역할은 있어도 작은 배우는 없다’는 과거 최불암의 말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제가 태어날 때 할아버지 무덤가에 백일홍이 피었대요. 그러면 집에 기생이 난다고 해서 벌초 가셨던 다른 친척 분들이 뽑으려는 걸 아버지가 말리셨다고 했는데….”

당시 백일홍은 기생이 아닌 ‘작은 역할도 크게 만드는 배우’ 이상훈의 미래를 예고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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