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동장비의 진화 무제한 방치는 곤란
레이저 레이서(제4대 상어수영복)는 더 빨리 헤엄치고 싶은 꿈을 실현시키는 데 도움을 줬지만, 동시에 '인류가 과연 외부의 힘을 빌려 성적을 향상시키는 데 제한이 필요 없는가'라는 또 다른 문제를 제기했다.
수백만 파운드의 연구 비용이 들었지만, 수영복마다 최대 사용기한은 불과 한 시간도 채 안 된다. 수영 선수들이 100분의 몇 초를 단축하기 위해 이렇게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사치가 아닐까? 비싼 장비를 둘러싼 논란은 수영에만 있는 게 아니다. 육상 운동화는 종종 수십만 달러가 넘고, 사이클 선수가 타는 사이클도 아마 수만 유로가 넘을 것이다.
이런 장비를 연구·개발하는 기업이나 기관은 우주 과학과 연관된 고급 기술을 이용하기도 하고, 비싸고 희귀한 광물 자원이나 인조 합성재료를 사용한다. 덕분에 인류는 기록 경신을 할 수 있지만, 그 자체가 인류사회 발전과 생산력 증강을 촉진시키는 데는 별다른 효과가 없다. 운동 선수들은 성적 향상을 위해 장비에 기대를 걸고, 심지어는 신앙으로 여기고 있어 일부 체육계 인사들이 "장비는 '과학기술 흥분제'와 같다"고 규탄한다. 원래 올림픽 정신은 인류를 격려해 스스로 도전하게 만드는 것이지, 과학 기술 수준을 높이는 게 아니다.
운동장비의 진보에는 반드시 하나의 제한이 있어야 한다. 대가를 아끼지 않고, 수단을 가리지 않고 연구하는 것은 그 존재의미에 위배된다. [츠신 중국청년보 기자]
▲ 국내 선수 중 박태환만 '레이저 레이서' 입어
수영은 사람이 한다. 수영복이 하는 게 아니다. 스피도사의 레이저 레이서도 신소재·신공법으로 만들어진 신제품일 뿐이다. 아무리 수영복이 진화하더라도 선수의 진보가 더디면 소용이 없다. '첨단 수영복'의 개념조차 희미했던 1989년에 재닛 에번스(미국)가 세웠던 여자 자유형 800m 세계기록(8분16초22)은 19년 가까이 꿈쩍하지 않고 있다.
레이저 레이서가 대부분의 선수에게 마법을 발휘한다고 속단하기는 이르다. 경쟁사 제품보다 얼마나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기록 단축 효과가 있는지 검증하려면 충분한 데이터와 분석이 필요하다. 레이저 레이서를 선호하는 선수도 수영복 형태에 따른 기호가 제각각이다. 한국 대표선수 중 유일하게 스피도와 후원 계약을 맺고 있는 박태환은 허리에서 발목까지 내려오는 레이저 레이서로 올림픽 메달에 도전한다. 상반신까지 덮는 제품은 몸에 잘 맞지 않고 가슴 쪽으로 물이 들어가기도 한다며 포기했다. 반면 마이클 펠프스(미국)는 종목별로 다른 레이저 레이서를 소화한다.
하지만 선수들에게 선택의 기회는 보장해 줄 필요가 있다. 국가대표가 아닌 선수들이 국내 대회에 레이저 레이서를 입고 나와 한국기록을 바꾸기 시작한다면 연맹으로서도 변화를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조선일보 성진혁 기자]
▲ '승리지상주의'에 물들고 있지 않나 고민을!
스피도사의 경영 자세를 비판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기업의 노력은 경탄할 만하다. 단 스포츠의 근원을 생각한다면 이처럼 용품에 의해 기록이 향상되는 것에는 의문이 든다.
6월 29일 수영 강국인 미국에서 올림픽대표선발전이 시작됐다. 올해 2월 레이저 레이서가 나온 이후 선발전 이전까지 수립된 개인종목 세계기록 19개 가운데 18개가 레이저 레이서에 의한 것이다. 95% 가깝게 똑같은 수영복을 입었다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것이다.
게다가 미국대표선발전에서도 레이저 레이서를 입은 선수들의 신기록이 나오고 있다.
개인적으로 레이저 레이서에 익숙하지 않은 것은 비주얼 문제도 있다. 남자 선수가 전신수영복을 입으면 단련된 육체미를 볼 수 없게 된다. 마치 사이보그 간의 레이스처럼 보이기도 한다.
인류가 스포츠를 사랑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일상생활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인간과 인간, 육체와 육체의 충돌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나에게는 지나치다고 생각되는 용품개발은 '승리지상주의'에 물들고 있는 올림픽, 스포츠의 문제점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쓰쓰미 고이치로(堤浩一郞) 일본 마이니치신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