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제공] 부산의 명소(名所) 사직야구장 근처에서 호프집을 운영하는 신영모(49·가명)씨는 요즘 롯데 자이언츠의 연승 소식에 신바람이 났다. " 야구가 잘되니 장사도 잘되는 기라. 부산 사람들이 신이 났거든. "
지난 13일 롯데가 기아 타이거즈를 4대 3으로 역전승을 거둔 날, 신씨 가게에선 50여 명 팬들이 잔을 맞부딪치며 밤늦도록 승리의 기쁨을 누렸다. 신씨는 " (지난해와 비교해) 올봄 매상이 적어도 30%는 늘어났다 " 고 기뻐했다.
경기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는 부산 지역 서민경제에 모처럼 생기가 돌고 있다.
정부의 무슨 경기 부양책이나 개발 호재가 떠서가 아니다. 부산·경남 연고의 프로야구팀인 '롯데자이언츠의 선전(善戰) 덕분'에 특히 야구장 인근 상권이 특수를 누리면서 부산지역 경기에 훈풍(薰風)을 불어넣고 있다. 부산은행 이장호 행장은 " 요즘 부산 경제에 돈이 도는 게 보인다 " 며 " 롯데 자이언츠의 '연승 효과' 덕분 " 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프로야구가 지역 경기에 활기를 불어넣는 '야구의 경제학'은 다른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한신 타이거스가 우승했다 하면 오사카 등 일본의 지역경기가 살아난 것이 그런 사례다.
◆ 야구가 닫힌 지갑 열어
올 들어 롯데 자이언츠는 12승 5패, 7할6리의 높은 승률로 총 8개 구단 중 2위를 달리고 있다. 만년 하위권을 맴돌던 예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지난 13일 8개 구단 중 최초로 10승 고지에 오르면서, 8년 만의 4강(포스트시즌) 진출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연이은 승전보에, 발길을 끊었던 팬들이 다시 돌아왔다.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여섯 번의 홈 경기 중 무려 세 번이 매진됐다. 경기당 평균 관중수는 최대 정원의 83%에 달하는 2만4838명. 사직야구장 관계자는 " 자리를 못 구해 돌아가는 사람들도 부지기수 " 라고 말했다.
야구장을 찾은 관람객들이 야구만 보고 갈 리 없다. 개막 후 15일 동안 롯데 구단이 사직구장 매장에서 유니폼·모자·점퍼 등을 판매해 올린 매출은 약 1억8000만원. 지난 시즌 전체 매출(3억원)의 60%에 달한다. 주변 상권도 꿈틀거린다. 먹을거리 골목에는 인파가 넘쳐나고 있다. 콩국수·수제비 전문점을 운영하는 하만호씨는 " 노점상들과 호프집 등의 매상이 많이 오른 것 같다 " 며 " (몰려드는 관중 때문에) 교통체증이 심해지면서 주차장 문제로 골치를 썩고 있다 " 고 했다.
◆ 한신타이거스, 영국 축구의 사례
'야구의 경제학'은 이미 일본에서 입증된 바 있다. 1964년 이래, 한신(阪神) 타이거스가 우승하면 이 팀의 연고지인 오사카(大阪)와 간사이(關西) 지방의 소비와 투자가 활력을 되찾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2003년 한신 타이거스가 18년 만의 리그 우승에 도전하자 일본 총합연구소는 " 우승이 간사이 지방에 미치는 경제 부양 효과는 최소 1133억 엔 " 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해 여름 두 달간 한신 타이거스 경기가 일으킨 경제 효과가 3000억 엔에 이른다는 오사카부립대학의 연구도 있다.
오사카와 부산의 공통점은 두 지역 사람들이 모두 열렬한 '야구 팬'이라는 점. 그만큼 프로야구 팬들의 '신바람 소비'가 지역 경제의 불쏘시개가 된다.
부산은행 관계자는 " 조선업 호황 덕분에 부산 지역 경제의 펀더멘털은 좋은 편이나, 이것이 경기와 소비 심리까지 크게 회복시키지 못했다 " 면서 " 하지만 롯데 자이언츠의 연승이 분위기를 바꾸고 있다 " 고 말했다.
◆ 문화·스포츠가 불황 처방될 수도
한신타이거스나 롯데자이언츠의 사례는 굳이 '혁신도시'나 재정지출 같은 정부 주도의 경기 활성화 대책이 아니더라도 문화나 스포츠를 통해 지역 경기에 어느 정도 부양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된 셈이다. 영국 축구도 마찬가지였다.
영국 리드대학 빌 게라드 교수(경영학)는 1984~2002년까지 영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210경기 결과와 영국 100대 대기업 주가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그 결과 영국팀이 승리할 경우 주가는 0.3% 상승한 반면 패배하면 0.4%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 대표팀이 승리하면 국민들이 먹고 마시고 기념품을 사는 등 지출이 많아져 기업 수익에 기여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