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블스' 영희·별이 더 많이 나와야[생생확대경]

  • 등록 2022-07-05 오전 6:00:00

    수정 2022-07-05 오전 6:00:00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 출연한 발달장애인 캐리커처 작가 정은혜씨
[이데일리 스타in 박미애 기자] 지난 달 23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니얼굴’은 캐리커처 작가 정은혜 씨가 그림을 그리며 세상과 건강하게 소통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이 영화는 그림을 매개로 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발달장애인의 모습을 통해 편견 없이 장애인을 바라보게 한다.

이 영화가 최근 한국 독립·예술영화 부문 1위를 기록하며 잔잔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화제의 인물로 뜬 정은혜 씨에 대한 관심에서 기인한다. 정은혜씨는 얼마 전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주인공 영옥(한지민 분)의 쌍둥이 언니로 다운증후군 장애를 가진 영희 역으로 출연했다.

이 드라마는 영희·영옥 자매를 통해 장애인과 그 가족이 겪는 어려움을 현실적으로 그려내며, 우리 사회가 외면해온 차별과 편견을 들춰냈다. 이 드라마에서 이소별이 연기하는 극중 청각장애인 별이도 마찬가지. 무엇보다 이 드라마는 장애인이 직접 장애인 역할을 맡은 점이 국내 콘텐츠 업계에 의미 있는 화두를 던졌다.

정은혜, 이소별의 캐스팅은 드라마 특히 프라임 시간대의 안방극장에서 보기 힘든 시도였다. 실제 올해 초 공개한 문화체육관광부의 ‘2021년 장애예술인 문화예술 활동 실태조사 및 분석연구’에 따르면, 국내 장애예술인 902명(전체 7000여명 추정)을 표본 조사한 결과 이들의 주요 활동은 서양음악 27.2%, 미술 26.8%로 두 분야에 몰렸다. 반면에 영화 0.7%, 방송연예(대중음악 제외) 0.5%로 해당 분야에서의 활동은 미미했다. 국내의 경우 드라마와 영화에서 장애인 역할을 장애인 배우가 맡는 것은 드물고, 비장애인 배우가 장애인 연습을 해 연기하는 것이 다반사다. 이처럼 비장애인 배우가 장애인 연기를 하는 것을 서구에서는 ‘크리핑 업’(Cripping up)이라고 한다.

할리우드에서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시대적 요구와 맞물려 ‘화이트 워싱’ 못지않게 ‘크리핑 업’에 대한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지난 3월 열린 제94회 아카데미시상식이 청각장애인 가족의 곁에서 음악에 대한 꿈을 키워가는 비장애인 소녀의 이야기를 그린 ‘코다’에 작품상과 각색상, 남우조연상 3관왕을 안긴 것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주인공 소녀의 가족을 모두 장애인 배우가 연기를 했으며, 아버지 역의 트로이 코처가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장애인 배우의 오스카 수상은 트로이 코처가 세 번째로, 극중 아내를 연기한 말리 매트린이 그에 앞서 1987년 ‘작은 신의 아이들’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지 35년 만이다.

또 지난해 11월 개봉한 마블영화 ‘이터널스’에서는 청각장애를 가진 히어로가 등장했는데, 청각장애인 배우인 로런 리들로프가 해당 캐릭터를 연기했다. 미국의 최고 권위 시상식과 최고 인기 콘텐츠 내 달라진 장애인 배우의 위상은 시대의 요구에 할리우드가 부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올해 들어 국내에서도 크리핑 업에 대한 재고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비장애인 배우가 장애인 연기를 하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사회적 약자를 소외시킬 수 있어서다.

이와 관련해 ‘우리들의 블루스’에서는 가볍게 흘려들을 수 없는 장면이 나온다. 영희를 빤히 보며 놀렸던 아이에 대해 영옥이 “(주변에서) 영희 같은 애를 못 봤으니까”라고 말하는 대목이다. 드라마는 영옥의 입을 빌려 단순히 아이의 잘못이 아니라 장애인을 배제시키고 이상하게 바라보게 만든 사회를 꼬집는다. 이를 콘텐츠 업계에도 적용할 수 있다. 장애인을 연기하는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장애인을 보여주는 것만큼 장애인과 그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없다. 더 많은 영희, 별이가 나와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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