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이정은, 역경 딛고 이겨낸 눈물의 우승.."가족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

  • 등록 2019-06-04 오전 5:00:00

    수정 2019-06-04 오전 5:00:00

이정은이 3일(한국시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의 컨트리클럽 오브 찰스턴에서 열린 LPGA 투어 메이저 대회 US여자오픈에서 데뷔 첫 승을 거둔 뒤 트로피를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사진=AFPBBnews)
[이데일리 스타in 주영로 기자] “저보다 엄마, 아빠가 더 긴장하셨을 텐데 이렇게 우승한 모습을 보여 드릴 수 있어서 행복하다.”

이정은(23)이 3일(한국시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의 컨트리클럽 오브 찰스턴(파71)에서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메이저 대회 US여자오픈(총상금 550만 달러)에서 데뷔 첫 승이자 1998년 박세리(22) 이후 한국선수로 10번째 이 대회 우승을 차지한 뒤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부모였다. 전남 순천에서 태어난 이정은은 효심 지극한 ‘효녀 골퍼’로 소문이 자자하다. 국내에서 활동 시절에도 늘 부모의 곁을 지키며 자신보다 가족을 먼저 생각했다. 평소에도 “아버지의 뒷바라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라고 자주 말해왔다.

이유가 있었다. 이정은의 아버지 이정호(55) 씨는 덤프트럭 운전을 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그러던 중 이정은이 4살 때 교통사고를 당해 하반신 장애를 입었다. 가족에겐 날벼락 같은 일이었다. 가정형편은 넉넉하지 못했지만 우연히 9살 때 골프를 배울 기회를 접했다. 동네에서 레슨프로로 일하던 지인의 배려로 골프를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쉽지 않았다. 3년 정도 골프를 배우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그만뒀다. 몇 년이 흘러 중학교 3학년이 돼서 다시 골프채를 잡았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커서 골프를 가르치는 레슨프로라도 돼 어려운 집안에 보탬이 되겠다는 생각이었다.

뒤늦게 다시 시작한 이정은은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대한골프협회가 주최하는 베어크리크배 아마추어 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면서 그해 상비군으로 뽑혔다. 그 뒤 성장은 더 빨라졌다. 아마추어 무대를 휩쓸며 이듬해 태극마크를 달고 국가대표가 됐다. 2015년 광주에서 열린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출전해 개인전과 단체전 금메달을 모두 목에 걸어 여자골프를 이끌 기대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우승을 할수록 꿈도 커졌다. 투어에 나가서도 우승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이정은이 남들보다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 가운데 하나는 남다른 가족애다. 부모는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도 딸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고등학교 시절엔 전세금 대출까지 받아 딸이 계속 골프를 할 수 있게 뒷바라지했다. 이정은은 자신을 위해 헌신하는 아버지와 어머니(주은진씨·49)를 행복하게 해 드리고 싶다는 꿈을 이루려 더 굵은 땀방울을 쏟아냈다.

프로가 된 이정은은 데뷔하자마자 성공 가도를 달렸다. 데뷔 첫해이던 2016년 우승은 없었지만, 신인상을 받았다. 그해 상금 2억5765만1611원으로 부모에게 경기도 용인에 조그마한 전셋집과 함께 아버지가 편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전동휠체어를 선물했다. 이정은은 “아빠에게 웃음을 드리기 위해 더 열심히 운동한 것 같다”며 “가족이 있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2년 차이던 2017년엔 마침내 국내무대를 평정했다. 한 해 4승을 휩쓸었고, 11억4905만2534원을 획득하면서 상금왕이 됐다. 그의 꿈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2018년에도 2승을 보탠 이정은은 2년 연속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상금왕을 차지했다. KLPGA 투어에선 2006년부터 2008년까지 3년 연속 상금왕을 이룬 신지애(31) 이후 10년 만에 나온 기록이다.

이정은에게 아버지는 가장 든든한 정신적 지주였다. 2016년 시즌 마지막 대회에서의 일이다. 신인상을 놓고 경쟁 중이던 이정은은 11월 열린 ADT캡스 챔피언십에서 첫날과 둘째 날 75타와 76타를 쳤다. 경기가 마음처럼 안 풀린 탓에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그때 부친 이 씨는 나약해진 딸을 크게 꾸짖었다. 이정은은 “아빠의 질책에 정신이 번쩍 들어 신인왕이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정은은 대회 마지막 날 67타를 쳤고, 신인상 경쟁자였던 이소영(23)을 34점차로 따돌렸다.

아버지 이 씨는 딸에게 말이 아닌 행동으로 모범이 되어 왔다. 그는 불편한 몸을 탓하지 않고 자신의 인생에서도 성공을 이뤘다. 딸을 뒷바라지하면서 틈틈이 장애인 탁구 선수로 활동했다. 전남 대표로 뽑혀 전국장애인체육대회서 은메달을 따기도 했다. 이정은은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더 힘을 냈다.

지난해 국내에서 2년 연속 상금왕을 차지한 이정은은 미국 LPGA 투어 진출을 놓고 고민했다. 부모님과 떨어져서 살았던 적이 없었기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걱정됐다. LPGA 투어 퀄리파잉 시리즈에 출전할 때만 해도 “되고 나서 생각해보겠다”는 말을 하고 미국으로 떠났다.

세계 정상급의 실력을 갖춘 이정은이었기에 퀄리파잉 시리즈는 가볍게 통과했다. 수석으로 LPGA 출전권을 받아 귀국했다. 부모는 고민하는 딸에게 “걱정하지 말고 미국으로 가라”고 위안시켰다. 오히려 미국으로 가는 딸을 더 걱정했다. 부모의 마음이다.

부모 걱정을 뒤로하고 미국으로 떠난 이정은은 더 크게 성공하는 것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길이라고 생각하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그의 새 출발은 순조로웠다. 시즌 개막 이후 8개 대회에 출전해 한 번도 컷오프되지 않았다. 3차례 톱10에 들며 빠르게 적응하더니 9번째 출전한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해 꽃을 피웠다. 이정은은 이번 우승으로 약 11억9000만원의 상금을 받게 됐고, 후원 기업으로부터 받은 우승 보너스까지 더하면 20억원이 넘는 돈을 벌수 있게 됐다. 이정은은 우승 트로피를 가장 먼저 주고 싶은 사람으로 “당연히 엄마 아빠”라고 말했다.

어려서 넉넉한 환경에서 살지 못한 이정은은 주변을 먼저 돌아보는 따뜻한 마음을 가졌다. 그는 2017년 KLPGA 투어 상금왕이 된 뒤 연말 경기도골프협회가 주최한 행사에 참석해 주니어 골프 꿈나무들에게 장학금과 골프용품을 쾌척했다. 어려웠던 시기에 주변의 많은 분에게 도움을 받았던 것에 대한 작은 보답이었다. 이정은은 이 자리에서 “어릴 때 집안이 너무 어려워서 친척뿐만 아니라 주변 분들에게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며 “나중에 꼭 성공해서 ‘나도 그분들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을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역경을 딛고 이겨낸 성공이기에 이정은의 우승엔 더 큰 의미가 담겨있다.

△이정은

1996년 5월 28일 전남 순천 출생

키 171cm

2014년 상비군, 2015년 국가대표

2016년 KLPGA 데뷔 신인상

2017년 KLPGA 투어 4승, 대상·상금왕·최저타수상 등 6관왕

2018년 KLPGA 투어 2승, 상금왕·최저타수상

2019년 미 LPGA 투어 진출 US여자오픈 데뷔 첫 우승

KLPGA 투어 주요 기록

통산 상금 20억원 돌파 (3년 6일)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 2회 (2017년 롯데렌터카 여자오픈, 2018년 KB금융 스타챔피언십)

역전 우승 2회 (2017년 하이원리조트 여자오픈, 2018년 한화클래식)

이정은이 2017년 4월 제주 롯데스카이힐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롯데렌터카 여자오픈에서 데뷔 첫 승을 거둔 뒤 어머니 주은진 씨와 트로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KLPGA)
2018년 KLPGA 대상 시상식에서 2년 연속 상금왕을 차지한 이정은(왼쪽)이 아버지(가운데), 어머니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골프in 박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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