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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운서 출신 프리랜서 방송인 임희정의 이 같은 고백이 잔잔한 감동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1일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에서 임희정은 자신을 ‘개천에서 난 용’이라고 표현했다. 변변치 못한 집안에서 훌륭한 인물이 나왔다는 뜻의 속담이다. 임희정은 ‘잘난 용’이 아닌 ‘개천에서 난’에 방점을 찍었다. 임희정은 “부모가 빈궁한 생활을 했다 해도 피나는 노력을 하면 원하는 꿈도 이루고 성공할 수 있다는 이 속담은 딱 나를 설명하는 한줄”이라고 말했다.
자기 고백이 이어졌다. 1948년생 아버지는 집안 형편 때문에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도 채 다니지 못하고 몸으로 하는 노동을 어려서부터 해오다 몸이 커지고 어른이 되자 가장 많은 일당을 쳐주던 건설현장에서 막노동을 시작해 50년 넘게 해오고 있다고 밝혔다. 1952년생 어머니는 국민학교를 겨우 졸업했고 8남매의 장녀로 10대에 동생들을 돌보는 엄마 역할, 집안일, 가족들 뒷바라지를 50년 넘게 이어오고 있다고 전했다.
임희정의 글은 자신에 대한 자랑이 아니었다. 그 반대였다. 아나운서라는 직업에 사람들이 당연히 번듯한 집안에서 잘 자란 사람, 부모의 지원도 잘 받아 성장한 아이로 생각을 했고 당연하다는 듯 ‘아버지는 무슨 일을 하시냐’고 물어오곤 했는데 자신이 있는 그대로의 대답을 회피했다며 자책을 했다. 그는 “내가 ‘건설쪽 일을 하시는데요’라고 운을 떼자마자 아버지는 건설사 대표나 중책을 맡은 사람이 됐고 어느 대학을 나왔냐는 질문에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아도 아버지는 대졸자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부모를 물어오는 질문 앞에서 거짓과 참 그 어느 것도 아닌 대답을 할 때가 많았다”며 “기준을 정해놓고 질문을 하는 사람들의 물음표도 잘못됐지만 그 기대치에 맞춰 정확한 대답을 하지 못한 나의 마침표도 잘못됐다”고 고백했다.
임희정은 “부모의 시절과 나의 시대는 아주 달라서 부모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며 “아버지와 어머니는 가난과 무지를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다. 어쩔 수 없는 것들은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원망도 창피함도 되어서는 안된다”고 적었다. 이어 “아나운서라는 직업이 대단한 일도 아니고 막노동이 변변치 않은 직업도 절대 아님을 나도 너무 늦게 깨달았다”며 “길거리를 걷다 공사 현장에서 노동을 하는 분들을 보면 나는 속으로 생각이 든다. 저분들에게도 번듯한 아들이, 잘 자란 딸들이 있겠지? 그 자식들은 자신의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나처럼 말하지 못했을까? 내가 했던 것처럼 부모를 감추었을까?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내가 증명하고 싶다”고 밝혔다.
임희정은 “평생 막노동과 가사노동을 하며 키운 딸이 아나운서가 되어 그들의 삶을 말과 글로 옮긴다”며 “나와 비슷한 누군가의 생도 인정받고 위로받길 바란다. 무엇보다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우리 모두의 부모가 존중받길 바란다. 기적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나를 키워낸 부모의 생”이라고 글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