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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단일팀의 구성은 쉽지 않았다. 시간적으로 촉박했고 국민적인 시선도 곱지 않았다.
여자 아이스하키의 남북 단일팀 구성이 처음 언급된 것은 지난해 6월이었다. 도종환 신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평창올림픽조직위원회 주사무소를 방문한 자리에서 “평화 올림픽이 이뤄질 수 있도록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을 만드는 방안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협의할 계획”이라고 밝힌 것이 불씨가 됐다.
실현 가능성이 떨어져 보였다. 당시는 남북 관계가 최고조로 경색된 상황이었다. 단일팀은커녕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가조차 불투명했다.
더구나 평창 올림픽 개막까지는 6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올림픽을 준비하던 우리 대표팀을 다시 구성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북한 선수의 합류로 우리 선수가 경기에 뛰지 못하는 경우가 나와선 안 된다’는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았다.
그렇게 수면 아래로 사라지는 듯했던 단일팀 논의는 올림픽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다시 급물살을 탔다. 북한이 긍정적인 태도로 나서기 시작했고 IOC가 적극적으로 협상 중재에 나섰다.
IOC 본부가 위치한 스위스 로잔에서 IOC가 주재하고 남북 관계자들이 참석한 ‘평창 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여자 아이스하키의 남북 단일팀 결성이 전격 합의됐다.
우리 선수 23명에 북한선수 12명이 가세해 총 35명의 단일팀 선수단이 꾸려졌다. 우리 대표팀의 새러 머리 감독이 총감독을 맡는 대신 북한 선수 3명을 의무 출전시키기로 합의했다. 단일팀 영문 이름은 ‘COR’로 표기하기로 했다.
환영의 목소리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올림픽만 바라보고 자신의 인생을 건 선수들의 당혹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엎질러진 물을 담을 수는 없었다. 선수들은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북한 선수들도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단일팀은 시간이 없었다. 상견례 다음날부터 본격 훈련에 돌입했다. 1월 28일부터는 남북 선수가 함께 어우러진 첫 합동훈련도 돌입했다. 촉박한 시간 속에서도 최적의 조합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우려와 달리 북한 선수들은 머리 감독의 지시에 귀를 기울이며 잘 따랐다. 남북 선수들은 서로 언니 동생 하면서 금세 친해졌다. 이틀 연속 북한 선수의 생일 파티를 함께하면서 서먹했던 분위기도 사라졌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여자 아이스하키팀의 남북 선수들이 북한 선수의 생일파티를 함께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것이야말로 올림픽 메시지와 올림픽 정신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단일팀이 불과 13일 손발을 맞추고 세계 6위 스위스와 1차전에 나섰다. 기대감이 하늘을 찔렀다. 경기가 열린 관동대 하키센터는 남북 응원단의 하나 된 응원 열기로 가득 찼다.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고위 인사들도 함께 자리해 역사의 순간을 함께 했다.
이틀 뒤 세계 5위 스웨덴과의 2차전도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0-8 완패. 객관적인 힘과 기술의 차이를 투지만으로 메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조별리그 탈락이 확정됐다.
하지만 결과와 상관없이 단일팀은 박수를 받았다. 남북이 하나가 돼 보여준 투지과 열정에 전 세계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바흐 IOC 위원장은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은 평화의 메시지를 전파했다”며 “이것이야말로 올림픽 정신”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르네 파젤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회장도 “역사적인 순간이며, 놀라운 경기였다”며 “(단일팀이 완패했다는) 결과보다는 평화와 존중, 우정이라는 가치가 이뤄졌다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심지어 미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 출신의 앤젤라 루제로 IOC 위원은 “아이스하키 단일팀이 노벨평화상을 받아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하기도 했다.
직접 경기에 뛴 선수들은 경기 걀과가 안 좋았던데 당연히 실망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표정에는 역사적인 단일팀으로서 올림픽에 참가다는 자부심이 느껴졌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숨가쁘게 이어온 단일팀의 여정도 막을 내린다. 1991년 탁구와 축구 납북 단일팀이 그랬던 것처럼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도 두고두고 역사에 남을 한 페이지를 장식할 전망이다.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그들은 승리자다. 충분히 자부심을 가져도 괜찮다.
어려운 상황에서 단일팀을 잘 이끈 머리 감독도 선수들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다. 그는 “우리 선수들은 경기 시작부터 끝까지 열심히 뛰었다”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우리 선수들이 자랑스럽다”고 강조했다.
평창 올림픽 일정이 끝나면 남과 북 선수들은 모두 각자 자리로 돌아간다. 언제 다시 이런 단일팀이 성사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 화합과 열정의 노력은 남북 화해 및 평화 구축에 큰 밑거름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