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시스터즈가 1962년 미국에서 발표한 앨범(자료제공=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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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스타in 김은구 기자] 가수 싸이(35·본명 박재상)가 ‘강남스타일’로 기록한 빌보드 3주 연속 2위는 한국 가수가 세계 최대 음반시장으로 꼽히는 미국 도전사에서 이룬 정점이다. 섣부르지만 오는 18일 다시 한번 1위 기록을 기대할만하다. ‘강남스타일’은 한국어로 한국에서 발매된 음반이라는 점에서 이런 빌보드 성적은 의미가 크다.
싸이에 앞서 한국 가수가 미국 시장을 두드린 것은 50년이 넘었다. 한국 가수의 첫 빌보드 진입 주인공은 1959년 미국에 진출한 김시스터즈였다. 김시스터즈는 1930년대 작곡과 노래로 한국 대중가요사에 이름을 남긴 김해송과 ‘목포의 눈물’로 유명한 이난영 부부의 두 딸 숙자와 애자, 사촌인 민자로 구성된 여성 트리오다. 이들은 미국 노래를 영어로 리메이크한 ‘찰리 브라운’으로 1962년 빌보드 차트 7위까지 올랐다. 싸이 이전 한국 가수가 빌보드에서 기록한 가장 높은 순위다.
한국계 제이스플리프(정재원)와 프로그레스(노지환) 2명을 주축으로 일본·중국계 케브 니시, 필리핀계 DJ 버맨이 팀을 꾸린 힙합그룹 파 이스트 무브먼트가 지난 2010년 10월 빌보드 1위에 오르기도 했지만 이들의 국적은 미국이었다.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는 “김시스터즈는 당시 지상파 TV쇼 ‘에드셜리번 쇼’에 수차례 출연했고 거의 모든 음악잡지 표지모델도 될 정도로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며 “라스베이거스의 대형 호텔 스타더스트의 룸키에 모델로 등장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이별의 종착역’ 등으로 국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보은 손시향이 리손 이라는 이름으로, 패티김은 1963년 각각 미국에 진출했다. 여성듀오 김치캣도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들은 현지 언론의 관심을 끌면서 각광을 받았지만 김시스터즈를 넘지는 못했다. 2009년 원더걸스가 영어버전으로 미국에서 발표한 ‘노 바디’도 76위였다.
최규성 평론가는 “한국 가수에게 미국 빌보드 차트는 성역과도 같았던 선망의 대상이었다”며 “싸이는 제2, 제3의 한국 가수가 미국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을 닦아놓았다고 할 수 있지만 앞서 선배들의 노력이 있었다는 걸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