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키드의 반란
1970년대만 해도 테니스는 사회주의 국가 중국에서 '부르주아 운동'이었다. 이런 분위기는 1980년대부터 조금씩 달라졌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 테니스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자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선수들을 해외로 내보내며 투자를 시작했다. 중국 여자테니스 국제화의 제1세대인 리팡·천리 같은 선수들은 1980년대 일본 전지훈련 때 테니스화도 없이 일반 운동화 차림으로 코트에 섰다고 한다. 주원홍 MBC ESPN 해설위원은 "당시 중국 선수들은 테니스 복장도 못 갖추고 빵으로 배를 채우면서 일본의 기술을 배웠다"고 했다.
중국 테니스는 2001년에 올림픽 유치가 결정되고, 메달 가능 종목에 대한 국가 차원의 대대적인 투자가 이뤄지면서 꽃을 피웠다. 중국은 체력 열세가 뚜렷한 남자 테니스보다는 진입 장벽이 상대적으로 낮은 여자에 주목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중국에서 테니스에 관한 한 "남자는 여자의 훈련 파트너용"이란 말이 나온다. 정상권 중국 여자 선수들은 국제대회에 남자 훈련파트너를 대동하며 파워 테니스를 익히는 호사를 누린다. 여기에 중국 경제가 비약적으로 성장하면서 테니스는 중·상류층이 즐기는 '고급 스포츠'로 인식이 바뀌고 있다.
■한국 선수 어디 없나요?
남자 역시 이형택이 지난해 말 은퇴하면서 사실상 대가 끊겼다. 이형택만 바라보며 손 놓고 있던 대한테니스협회(회장 조동길)는 경쟁력 있는 국제 유망주를 거의 길러내지 못했다. 한국이 이번 호주오픈의 남녀 엔트리(각각 128명)에 단 한 명도 들지 못한 것이 단적인 예다. 이형택은 "이대로 가면 10년 동안 국제적인 선수가 나오지 못할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28일 열린 호주오픈 여자 준결승에서 중국의 리나는 세레나 윌리엄스(세계1위·미국)에 0대2로, 정제는 쥐스틴 에넹(벨기에)에 0대2로 각각 져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그러나 이들이 세계 정상선수들과 대등한 경기를 하는 TV중계를 한국팬들은 부럽게 시청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