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제공] "1등을 하고 싶으면 2등으로 달려라."(?)
사이클 경주에서 줄곧 맨 앞에서 페달을 밟는 것은 결코 '권장사항'이 못 된다. 선두에서 온몸으로 바람을 맞으며 달리는 것이 멋져 보일지는 몰라도 자칫 힘만 빼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오히려 앞 선수의 자전거 꽁무니에 바짝 달라붙어 달리다, 결승점을 앞두고 막판 스퍼트하는 것이 가장 실속 있는 경주전략이라고 사이클 선수들은 말한다. 공기저항을 줄여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서라고 한다.
5일 개막하는 국민체육진흥공단 주최 국제 도로사이클대회 '투르 드 코리아(Tour de Korea) 2009'는 이처럼 공기저항을 최대한 줄이는 레이스 전술이 승패의 관건이다. 이번 대회는 열흘간 전국 10개 도시를 돌며 총 1418.3㎞를 달리는 장거리 레이스. 스피드, 산악 경주능력, 지구력 등이 종합적으로 요구된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지구력이다.
■15㎝ 뒤에서는 공기저항 44% 줄어
앞 자전거의 뒤에 붙어 달리는 기술을 '드래프팅(drafting·앞차의 뒤를 따라붙는다는 뜻)'이라고 한다. 앞으로 달려나가는 자전거의 뒤쪽은 공기 압력이 낮아지면서 저항을 덜 받는다. 또 달리는 자전거 뒤에 형성되는 낮은 기압이 뒤 자전거를 앞으로 당겨주는 인력까지 만들어내, 뒤따르는 선수는 여러모로 유리하다.
자동차 경주에서도 앞차를 추월하려고 드래프팅 기술을 이용한다. 고속으로 달리는 직선 주로에서 앞차를 바짝 뒤쫓다가 앞차가 곡선 구간으로 들어서는 순간 속도를 높이며 순간 추월하는 기술이다. 수영 경기에서 옆 레인 선수가 일으키는 물살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것도 일종의 드래프팅 원리를 적용한 것이다.
한국체육과학연구원 김정훈 박사는 "학계에 따르면 1대의 자전거 뒤에서 드래프팅을 할 경우 앞 선수보다 26%가량의 힘을 아끼며 레이스를 펼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앞쪽과 좌우로 다른 자전거에 둘러싸였을 때 드래프팅 효과는 최대 45%의 에너지 절감으로 나타난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앞 자전거의 뒷바퀴와 뒤 자전거의 앞바퀴 간격이 15㎝일 때 44% 정도 공기저항이 줄어들고 바퀴 간격이 90㎝일 경우 공기저항 감소효과는 34%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람막이' 팀원 활용하기도
사이클 경주에선 드래프팅을 위해 팀원들 간 협력 전술도 필수적이다. 랜스 암스트롱(미국)이 1999년부터 2005년까지 세계 최고 사이클대회 '투르 드 프랑스'에서 7연패(連覇)를 이룰 수 있었던 것도 공기저항을 줄여주는 치밀한 팀플레이의 결과물이었다.
베이징올림픽에서 대표팀을 이끈 전제효 상주시청 감독은 "암스트롱을 우승시키기 위해 다른 팀원 8명은 개인 성적을 포기한다. 팀원들이 교대로 앞에서 레이스를 이끌고 암스트롱은 페이스메이커를 뒤쫓아 간다"고 했다.
레이스 도중 다른 팀 선수들과 손을 잡는 경우도 있다. 경기 도중 선두 그룹이 형성되면 그 그룹 선수들끼리 200~300m 정도씩 교대로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할 때도 있다(정태윤 남자 국가대표 감독)는 것이다. 일단 후미 그룹과의 격차를 벌린 뒤, 자기들끼리 막판 순위 경쟁을 하겠다는 암묵적 거래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정 감독은 "어떤 선수가 자기는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안 하고 편하게 쫓아가기만 할 경우 다른 선수들이 어떤 식으로든 응징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