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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진출 이후 코리안 빅리거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미 서재응과 김선우는 한국 프로팀에 입단했고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던 김병현의 계약은 아직까지 지지부진합니다. 또 맏형 박찬호는 스프링캠프 초청 선수 계약에 그쳐 시범경기서 모든 것을 올인해야 하는 형편입니다. 이데일리 SPN은 스프링캠프를 앞두고 지난 해까지 코리안 빅리거들이 메이저리그에 남긴 발자취를 시리즈로 정리합니다./편집자주
[로스앤젤레스=이데일리 SPN 한들 통신원] LA 다저스 최희섭은 지난 2005년 7월11일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홈런 더비에 출전했습니다. 하지만 출전이 최종 확정되기까지 과정은 그야말로 ‘여러가지 복잡한 사정과 형편이 뒤엉킨’ 우여곡절, 그 자체였습니다. 그래서 아시아 선수로는 처음으로 올스타 홈런 더비에 나섰다는 게 반갑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개운치 않았습니다.
그 해 홈런 더비는 이듬해 3월 처음으로 열린 월드베이스볼 클래식(WBC)의 홍보를 위해 각국선수들을 초청한 국제 이벤트였습니다.
당시 메이저리그는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개최를 추진하면서 몰염치하고 독단적으로 작업을 해 출전국들의 반발을 샀습니다.
특히 일본이 그랬습니다. 일본은 개최 시기, 수익금 분배 등등서 메이저리그가 ‘제 논에만 물을 대는’ 식으로 밀어붙이자 한 때 출전 보이콧 움직임을 보이는 등 저항했습니다. 일본 선수노조도 선수들의 의견을 더 들어봐야 한다며 메이저리그의 속을 태웠습니다.
홈런 더비에 초청받았던 뉴욕 양키스의 마쓰이 히데키와 대타 격이었던 시애틀 매리너스의 스즈키 이치로가 끝내 출전하지 않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았습니다. 다른 분야에서처럼 야구에서도 제멋대로 하는 미국의 들러리가 되기 싫다는 의지를 행동으로 옮긴 것이었습니다.
야구의 종주국을 자처하는 메이저리그의 오만방자와 안하무인은 그 때만이 아니었죠. 9년 전엔 자국과 중남미 선수들은 물론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선수들까지 포함하는 ‘월드 드래프트’를 실시하겠다고 해 뜨악하게 했습니다.
찜찜한 구석은 또 있었습니다. 홈런 더비에 출전하는 선수를 뽑는 과정에서 최희섭과 일본 선수들이 보여준 태도의 차이였습니다.
메이저리그와 홈런 더비 주관 방송사인 ESPN이 삼고초려를 한 마쓰이는 “내가 설 자리가 아니다”라며 끝내 사양했습니다. 양키스에서 4번타자로도 활약했던 그는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과 관계 없었던 2004년에도 홈런 더비 출전을 제의받았지만 같은 이유로 출전하지 않았습니다.
이치로는 아예 한술 더 떴습니다. 그는 “한국과 대만선수들은 왜 출전시키지 않느냐”며 주최측을 한껏 비아냥거리고 끝내 출전을 보이콧 했습니다.
정작 떡 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고 있었는데 김칫국부터 잔뜩 들이키고 있었던 셈입니다. 하지만 천만다행으로 코미디로 끝날 뻔했던 해프닝은 일본 선수들의 도움(?) 덕분에 해피 엔딩이 되었습니다. 마쓰이에 이어 이치로까지 거절한 덕분에 최희섭이 ‘대타의 대타’로 홈런 더비에 출전했던 것입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 있고, 과정이야 어떻든간에 세계 야구의 최고봉에서 펼쳐지는 최고의 무대에 한국 선수가 선 것은 경사가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변방 취급을 받고, 아직도 일본과 비교하면 미국을 상대로 제 목소리를 못내는 한국의 현실이 야구에서도 고스란히 재연된 것같아서 씁쓸하기 짝이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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